제도와 비용의 차이
은퇴 후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의료비입니다. 소득은 줄어들지만, 건강 지출은 오히려 늘어나는 시기. 한국과 미국의 은퇴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요? 의료보험 제도와 혜택, 그리고 실제 비용까지 비교해보겠습니다.
한국 은퇴자들의 의료보장은 대부분 국민건강보험이 맡고 있습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회사가 절반을 내주지만, 은퇴 후에는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어 본인이 전액을 부담합니다. 2024년 기준, 국민건강보험료는 소득과 재산(부동산, 자동차 등)을 기준으로 산정됩니다. 은퇴 후 소득이 줄어들면 보험료도 낮아지지만, 집이나 자동차 등 자산이 많다면 보험료가 다시 올라갑니다. 대략 은퇴자의 평균 건강보험료는 월 10만~30만 원 수준입니다.
한국 건강보험의 강점은 보장성입니다. 대부분의 기본적인 진료, 입원, 수술, 검사 등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습니다. 본인 부담금은 외래진료 30%, 입원 20% 수준이며, 본인부담 상한제 덕분에 연간 의료비 부담이 일정 금액을 넘으면 추가 지원도 받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노인장기요양보험이 함께 운영되어, 일정 등급을 받으면 재가서비스나 요양원 이용 시에도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은퇴 이후 요양 문제가 걱정되는 사람들에게는 큰 버팀목입니다.
미국 은퇴자들의 경우, 메디케어(Medicare) 가 핵심 의료보험입니다.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며, 크게 Part A(입원보험), Part B(외래진료), Part D(약값 지원)로 구성됩니다. 선택적으로 사보험(Part C, Medicare Advantage)이나 메디갭(Medigap) 플랜으로 보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Part A는 오랜 기간 FICA 세금(급여의 1.45%)을 납부한 덕분에 대부분 무료로 제공됩니다. 하지만 Part B와 Part D는 월 보험료를 따로 내야 합니다. 2024년 기준 Part B 보험료는 월 174.70달러(약 23만 원) 입니다. 소득이 높을수록 더 많이 내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약값 지원(Part D), 추가 보장(Medigap), 사보험(Advantage Plan)까지 더하면 평균적으로 미국 은퇴자들은 월 400600달러(약 50만80만 원) 정도를 의료보험 관련 비용으로 지출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한국은 월 10-30만 원 수준의 보험료로 대부분의 의료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반면, 미국은 기본 보험료만 해도 한국의 두세 배에 달합니다. 게다가 미국은 보험료 외에도 본인 부담금(20% 내외), 디덕터블(공제금), 코페이(진료 시마다 내는 비용) 등이 따로 있어, 실제 의료비 지출은 더 높아집니다. 반면 미국의 메디케어는 고가 치료나 심각한 질병(암, 심장질환 등)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넓은 선택지를 제공합니다. 비급여 개념이 없는 대신, 민간 보험 플랜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보장 범위를 설계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장점입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한국 은퇴자들은 국민건강보험 외에도 실손의료보험을 가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입원비, 고가 검사, 비급여 항목 등을 보완하기 위한 민간 보험이죠. 2024년 기준 월 보험료는 나이에 따라 5-20만 원 수준입니다. 미국은 메디케어 외에도 사보험(Advantage, Medigap)을 통해 보장 범위를 확장합니다. 사보험의 가격대는 플랜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은퇴자 평균 월 보험료는 200-300달러(25-40만 원) 수준입니다.
장기 요양 서비스 측면에서도 차이가 큽니다.
한국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제도화되어 있어, 일정 등급을 받으면 재가서비스, 요양시설 비용을 지원받습니다. 본인부담금은 대략 15-20% 수준입니다. 미국은 메디케어가 장기 요양 서비스를 거의 보장하지 않습니다. 별도의 메디케이드(Medicaid) 가 저소득층 대상 복지로 제공되지만, 자산 기준(50만~100만 달러 이하)을 충족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외에는 모두 개인 부담이며, 은퇴자들의 가장 큰 재정적 리스크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정리하자면, 한국의 은퇴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보험료로 폭넓은 보장을 받지만, 서비스의 질과 대기시간, 비급여 항목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미국 은퇴자는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지만, 원하는 의료 서비스를 선택할 자유와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개인의 재정적 준비가 필수입니다. 결국 한국은 공공 보장이 중심이고, 미국은 개인 책임을 전제로 한 선택형 구조입니다. 비용 부담의 무게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가 두 나라 의료보장의 본질적 차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