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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 안 주고 안 받기

by 라온재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조금 문화를 익숙하게 경험하며 자란다. 결혼식, 장례식, 돌잔치, 집들이, 각종 경조사 때마다 우리는 서로 금전적 도움을 주고받는다. 때론 단순한 축하나 위로의 의미를 넘어, 오래된 인연을 확인하는 사회적 의무처럼 여겨진다.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 정신, 그리고 받으면 언젠가는 돌려줘야 한다는 일종의 신의와 의무감이 뒤섞인 복잡한 문화다. 나는 오랜 시간 이런 부조 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결혼식이 있으면 일정한 액수의 봉투를 들고 갔고, 누군가 상을 당하면 멀리서라도 조의를 표하기 위해 시간을 내어 참석했다. 내게도 이런 도움을 받는 날이 언젠가 오겠지, 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에게 부조는 마치 공기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운 존재였다.


2009년 미국으로 이민을 오고 나서,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이 변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으로 다가온 것 중 하나가 바로 부조 없는 삶이었다. 미국에서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초대받았을 때, 누구도 봉투를 들고 오지 않는다. 축하 카드 한 장, 작은 선물 정도가 전부였다. 결혼을 하든, 누군가 가족을 잃든, 주변 사람들은 마음을 표현하되 금전적 교류는 최소화한다.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미국에 와서도 한국에서처럼 지인들이 결혼하면 부조금을 보내야 하는가? 반대로 내가 미국에서 살다 보니 한국의 친구나 친척이 결혼할 때마다 송금을 해야 하나? 한동안 고민이 이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미국 생활이 길어질수록 한국에서의 부조 인연들도 점차 희미해졌다. 물리적 거리와 새로운 삶의 방식, 그리고 양국의 생활 방식 차이가 나를 부조 문화에서 점차 분리시켰다.


미국의 부조 없는 문화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부조를 주지 않으면 괜히 미안하고, 받지 못하면 허전했다. 하지만 이민 생활이 쌓이고, 나 역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다 보니 부조 문화의 굴레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었다. 오히려 더 자유로워졌다. 누구의 경조사에 마음만 전해도 충분하고, 내가 특별히 누군가에게 빚진 기분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굳이 얼마를 넣어야 할지, 언제 돌려줘야 할지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심적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인간관계가 더 가볍고 솔직해졌다. 오랜만에 연락 오는 사람이 있으면 혹시 무슨 일로 연락했나 경계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축하와 위로는 말과 행동, 그리고 소소한 선물로도 충분히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이민 온 지도 어느덧 15년이 지났다. 이제 은퇴를 앞둔 나이, 미국에서의 삶이 더 익숙하다. 이젠 친척들의 경조사에도 참석할 수 없는 게 당연해졌다. 친척이 결혼하거나 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어도, 멀리서 조용히 마음으로만 응원하고 위로를 전한다. 봉투를 들고 가는 일도, 받는 일도 모두 옛일이 되었다. 한편으론 아쉽기도 하다. 부조는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는 정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이민 생활의 시간과 경험이 내게 가르쳐준 건, 부조가 없어도 인간관계는 유지될 수 있고, 새로운 문화 속에서 더 가볍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문화 속에서 오히려 내 삶이 더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그 자유로움은 미국 이민 생활에서 내가 얻은 뜻밖의 선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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