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는 원래 상부상조였다. 어려운 시절, 갑작스러운 장례나 큰 잔치를 치르기 어려웠던 시대에는 이웃과 친지들이 돈을 조금씩 보태며 서로 도왔고, 그것은 곧 나에게도 돌아오는 따뜻한 구조였다. 하지만 그 정신은 사라지고, 지금의 부조문화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지난 30-40년 부조는 급속히 계산되는 문화로 변해왔다. 사람들은 돈을 주고받는 것을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고지서처럼 다시 회수하려 한다. 주고받음의 진심은 사라지고, 얼마를 줬으니 얼마를 받아야 한다는 수치만 남았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문화가 사람들의 삶을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가령, 결혼식이다. 부조가 많이 들어올 거라는 기대 아래, 실제 필요 이상으로 화려한 결혼식을 준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소박하고 합리적인 결혼보다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불러 회수를 늘리는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장례식 또한 마찬가지다. 조용히 가족 중심으로 치르고 싶어도, 체면과 관계라는 명목 하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부조금 카운트부터 장례식장 임대까지 일종의 사회 행사처럼 치러진다.
30여년전, 나는 과거 직장에 몸담았을 때 이 문화를 뼈저리게 느꼈다. 상사의 부모님 장례식에 직원들이 단체로 동원되어 부조금을 세는 일을 맡았다. 고위직일수록 돈이 쏟아졌고, 사람들은 그 돈의 액수로 사회적 영향력을 체감했다. 심지어 직장 내에서 떠도는 냉소적인 농담도 있었다. 부장일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야 부조가 많이 들어오지, 퇴직하고 나면 안 들어온다. 슬프게도 이 말은 농담 같지만 현실이었다. 부조는 본래 정과 의리의 문화였지만, 지금은 누구에게나 부담의 문화가 되었다. 정년퇴직 후에도, 고정수입 없이 살아가는 은퇴자에게 경조사 부조는 큰 스트레스가 된다. 연락이 뜸했던 사람에게서 부고나 청첩장이 오면, 진심보다 계산기가 먼저 켜진다. 그때 이 사람이 나한테 얼마를 줬더라… 지금 얼마를 보내야 하나… 고민은 이어지고, 마음은 무거워진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이제는 이 문화를 졸업할 시점이라고. 일정한 나이가 되거나, 은퇴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사람들에게는 부조문화에서 공식적으로 제외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예컨대 만 70세 이후에는 누구도 부조를 주거나 받지 않는다는 새로운 기준, 혹은 은퇴 이후에는 모든 부조에서 손을 떼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 이런 졸업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은퇴자들의 삶은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그리고 경조사는 돈이 아닌 마음으로 채워지는 진짜 공동체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은 부조가 관계의 비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늙어간다는 것은 더 단순하고, 더 진솔한 관계로 살아가는 일이어야 한다. 이젠 부조를 졸업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