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신부는 무대 위의 배우일 뿐이고, 진짜 주인공은 부모님과 그들의 지인들이다. 이 말은 한국의 결혼식을 겪어본 많은 이들이 속으로 느끼는 바일지도 모릅니다. 결혼식 날, 하객 대다수는 신랑 신부보다 부모님과 인연 있는 사람들입니다. 친구 몇 명, 동료 몇 명 외에는 대부분 어른들의 손님이죠. 심지어 어떤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가 하객 중 절반 이상을 처음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혼이 두 사람의 결합이라면, 결혼식 역시 그들의 취향과 가치관이 반영된 축제가 되어야 마땅할 텐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조선 후기에서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시기를 들여다보면, 당시 결혼은 개인의 사랑이 아니라 가문과 가문 간의 계약, 혹은 생존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특히 조혼이 일반화된 시기에는 신랑 신부가 어린아이였기에 결혼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주체는 철저히 부모였습니다. 부모가 정해준 상대와 부모가 마련한 혼례를 치르며, 자녀들은 결혼을 삶의 독립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가족 질서 속으로 들어가는 의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전통은 일제시대에도 유지되었고, 유교적 가부장 문화 속에서 결혼은 부모의 일로 인식되었습니다.
1970~8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결혼식은 인간관계를 확인하고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행사였습니다. 이때부터 부조금은 단순한 축하의 의미를 넘어서서 사회적 의무, 나아가 일종의 투자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내가 10만 원을 냈으니, 너도 내 아들 결혼식에 10만 원을 가져와야 한다. 이런 상호성의 기대가 부조문화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결국 결혼식은 가족의 금전 회수의 장으로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90년대 이후부터는 경제적 풍요와 소비문화가 결합하면서 결혼식은 체면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더 비싼 예식장, 더 화려한 드레스, 더 좋은 밥, 더 비싼 사진. 이는 사랑의 시작을 축복하는 의식이라기보다는, 부모 세대가 이룬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과시하는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문제는 이 모든 화려함이 대부분 신랑 신부의 뜻과는 관계없이, 부모님이나 사회적 기대에 의해 강요된다는 점입니다. 이 과정에서 결혼 당사자들은 점점 목소리를 잃고, 행사의 소비자 혹은 연출된 배우로 전락하고 맙니다.
많은 젊은 세대가 이 흐름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스몰웨딩, 셀프웨딩, 하객 없는 결혼식, 혹은 결혼 자체를 생략하는 커플들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결혼식은 우리의 날이지, 부모님의 잔치가 아니다라는 선언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세대 간 가치 충돌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결혼식이 진정으로 누구를 위한 날인가를 묻는 것은, 단순히 행사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삶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되돌아보는 철학적 질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