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삶을 정리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준비를 조금 다르게 하기로 했습니다. 살아 있을 때, 정신이 온전할 때, 내가 직접 주최하는 장례식을 열고 싶습니다. 단순히 관 속에 누워 누군가의 조의를 받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내 사람들에게 직접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있는, 나의 방식으로 보내는 마지막 만남. 살아 있는 장례식 입니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그 날이 가까워졌다는 징후 즉 회복 불가능한 심각한 질병이나, 중증치매나, 노화로 ADL(일상생활 동작) 수행이 스스로 불가능해진 상태가 된다면 의료진과 충분한 상담을 거쳐 저는 마지막 여정을 준비할 것입니다. 병원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며 일해온 저는, 그 누구보다 생의 끝이 어떻게 펼쳐질 수 있는지를 실감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제 삶의 마지막 장면을 스스로 연출하고 싶습니다.
가장 먼저, 저는 장례식을 위한 공간을 정할 것입니다. 병원이 아니라, 차가운 장례식장도 아닌, 따뜻한 분위기의 고급 호텔 스위트룸을 하나 빌릴 계획입니다. 제가 좋아하던 jw marriott 은 어떨까요?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내가 좋아하던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곳. 그곳에서 한번에 한 명씩, 혹은 두세 명씩, 저의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장례식은 일주일 동안 이어집니다. 하루는 오랜 친구를 초대하고, 또 하루는 먼 친척, 그리고 하루는 함께 일했던 동료들. 어떤 날은 노래를 함께 부르던 옛 중창단 친구들이 올 수도 있고, 또 다른 날은 글쓰기를 함께 나눴던 사람들과 기억을 나눌 수도 있겠지요. 이 장례식은 단지 조문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기억의 재회를 위한 시간입니다.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옛날 사진을 꺼내 보고,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의 책들-여행기, 단상, 은퇴 후의 삶에 대한 기록들-을 스위트룸의 벽이나 테이블에 전시합니다. 내가 살아온 발자취들이 공간을 채우고, 내가 사랑한 문장들이 조용히 빛납니다. 그 책들을 한 권씩 선물로 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건 내가 너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야.
물론, 장례식에 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 계획이 실현될 그 무렵, 나보다 먼저 떠나 있을 사람들도 있을 테고, 또 먼 거리나 사정으로 인해 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숫자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과의 만남이 진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컨디션이 허락된다면, 저는 노래도 부르고 싶습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듣기만 해도 좋겠지요. 살아 있는 동안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 친구들과 함께 부르던 곡들. 그 노래들은 제 생의 배경음악처럼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를 함께 나눈다는 것은,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다시 떠올리는 가장 좋은 방식일 것입니다. 이 장례식은 고요한 작별이자, 따뜻한 축제입니다. 저는 울지 않기로 다짐합니다. 오히려 웃으며, 고맙다고, 미안했다고, 사랑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말을 그동안 못했던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도 듣고 싶습니다. 나를 어떻게 기억했는지, 함께했던 시간은 어떤 의미였는지를.
장례식이 끝난 후, 저는 호스피스로 들어갈 것입니다. 제 삶이 연장보다 평온을 더 필요로 한다는 판단이 설 때, 저는 그 선택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미리 모든 재산과 정리 사항들을 남겨두고, 제 마지막은 단식과 단수로 조용히 맞이하고자 합니다. 저는 자식들에게 무덤을 남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대신, 제가 여행했던 바다 어딘가에 제 유골을 뿌려주길 바랍니다. 저의 삶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았고, 저의 마지막도 그 흐름을 따라 흩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런 계획을 세운 지는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극단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야말로 나다운 마무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삶을 살아낸 방식이 특별했듯이, 그 끝도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아직 먼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조금씩 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한 걸음씩 그 날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글 또한, 그 여정의 일부입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이 기록을 읽고,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