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공기, 꽃가루와 먼지,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이 모든 환경이 때로는 몸의 적이 된다. 알레르기는 바로 그런 현상의 이름이다. 나에게 무해한 물질에 대해 내 몸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질병, 그것이 알레르기이다. 특정 음식, 꽃가루, 곰팡이, 동물의 털, 약물, 심지어 찬 공기나 햇빛까지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다. 알레르기의 증상은 단순한 재채기와 콧물부터, 가려움, 발진, 두드러기, 천식, 심할 경우 아나필락시스와 같은 생명을 위협하는 급성 반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알레르기를 겪는 사람은 평범한 일상이 위협이 되기도 한다.
알레르기의 원인에 대한 설명은 수십 년 동안 바뀌어 왔으며, 현대에는 위생가설(Hygiene Hypothesis)이 주목받고 있다. 이 가설은 지나치게 청결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오히려 알레르기에 더 취약하다는 주장이다. 어릴 때 자연과 충분히 접촉하지 못하면 면역계가 다양한 외부 자극에 익숙해질 기회를 잃게 되고, 그 결과 해가 되지 않는 물질에 대해서도 과도하게 반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Old Friends Hypothesis(오랜 친구 이론)는 이 개념을 확장하여,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함께해온 특정 미생물들, 예컨대 장내 세균이나 토양의 박테리아, 심지어 기생충까지도 면역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본다. 이들이 사라지면서 면역계가 혼란을 일으키고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이 말해주는 것은 단순하다. 자연과의 거리, 미생물과의 접촉 부족이 현대인의 면역 체계를 과잉반응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성인이 된 이후, 특히 알레르기 증상이 시작된 이후에는 어떻게 적응하고 대응할 수 있을까?
우선 가장 기본적인 대처는 원인을 파악하고 가능한 한 노출을 줄이는 것이다. 예컨대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꽃가루가 많이 날리는 계절에는 외출 후 샤워나 세안, 외출 시 마스크 착용, 창문을 닫아두는 것 등이 도움이 된다. 곰팡이 알레르기가 있다면 환기와 제습, 그리고 주기적인 청소가 핵심이다. 먼지 진드기에 민감한 사람은 침구류를 고온 세탁하고, 카펫이나 커튼을 제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여행지에서는 이러한 통제가 어렵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식재료, 새로운 공기 중 입자들은 예측 불가능한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여행 전에 자신이 어떤 알레르기에 민감한지를 알고, 필요하다면 항히스타민제나 알레르기 응급약(에피네프린 주사기 등)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 해당 알레르겐을 현지어로 설명할 수 있도록 메모하거나, 알레르기 경고 카드를 준비하는 것이 유용하다. 고산지나 먼지가 많은 지역, 꽃가루가 많은 자연 환경에서는 마스크나 선글라스도 도움이 된다.
항히스타민제는 알레르기 증상을 완화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콧물, 재채기, 가려움, 두드러기 같은 증상은 대부분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면 빠르게 호전된다. 1세대 항히스타민제(예: 디펜히드라민)는 졸림 등의 부작용이 있지만 효과가 빠르며, 2세대 항히스타민제(예: 로라타딘, 세티리진)는 졸림이 덜해 일상생활에 더 적합하다. 하지만 항히스타민제는 알레르기의 근본 원인을 치료하지는 않으며, 장기 복용 시 효과가 감소하거나 구강건조, 어지럼증, 소화불량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특히 고령자는 약물 상호작용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증상이 심하지 않다면 생활환경 조절과 병행하여 최소 용량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경우에는 신속한 응급조치가 필요하다. 특히 아나필락시스 반응이 의심되는 경우, 즉 숨 가쁨, 급격한 혈압 저하, 전신 발진, 의식 저하 등이 나타날 경우, 지체 없이 에피네프린(에피펜)을 주사하고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에피네프린은 심장박동을 유지시키고 기도를 열어주는 작용을 하므로 생명을 구하는 데 결정적이다. 알레르기 체질을 가진 사람은 항상 응급 약품을 휴대해야 하며, 함께 여행하는 사람에게도 사용법을 미리 알려 두는 것이 좋다.
면역력 개선과 장기적인 알레르기 조절을 위해서는 장내 미생물의 균형 회복도 중요하다. 발효식품, 다양한 식이섬유 섭취, 자연과의 접촉, 적당한 운동과 수면은 모두 면역계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고산지 여행, 남미나 중동, 아프리카처럼 생소한 환경에서는 평소보다 더 체계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체질적으로 알레르기에 취약하다고 하더라도, 여행 루트를 여유 있게 잡고, 예상되는 알레르겐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한다면, 알레르기 때문에 여행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현대 사회의 공기와 음식, 그리고 청결이라는 이름의 환경은 알레르기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몸과 면역계를 이해하고, 자연과 다시 연결되며, 스스로의 환경을 조절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다. 알레르기는 약점이 아니라, 몸이 외부 환경에 반응하며 보내는 하나의 신호일 뿐이다. 그 신호에 귀 기울이고, 조화로운 대응을 한다면, 우리는 더 자유롭게 숨 쉬며 여행하고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