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결정하는 이유, 한국과 미국은 왜 다를까

by 라온재


은퇴를 언제 할 것인가. 이 단순한 질문은 사람의 가치관과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한국과 미국을 비교해보면 이 차이는 더욱 명확하다. 나 역시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아가며, 두 문화 사이의 간극을 자주 느껴왔다. 은퇴에 대한 생각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에서 은퇴란 ‘언제까지 돈을 벌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국민연금이든 퇴직금이든, 노후를 지탱할 자산이 충분하지 않으면 은퇴는 먼 이야기였다. 자식들 결혼시키고, 손주까지 챙기는 것이 어느새 당연한 책임처럼 여겨졌고, 이를 위한 경제적 준비가 은퇴의 전제조건이 되었다. 돈이 모이지 않으면 몸이 부서져도 출근하는 것이 한국 직장인의 현실이었다. 가족을 위한 희생, 사회적 체면, 남들이 뭐라 할까 하는 시선까지. 은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요구와 맞물린 집단적 숙제였다.


반면 미국에서는 조금 다른 풍경을 보게 된다. 물론 이들도 돈을 걱정하지 않는 건 아니다. 401(k)나 소셜시큐리티, 개인연금 등 은퇴를 준비하는 수단은 많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에게 은퇴는 단순히 ‘경제적 준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을 다시 묻는 과정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언제쯤 일을 그만둘 수 있을까?“가 핵심 질문이 된다. 직장에서 더는 성장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혹은 일이 삶을 갉아먹는다고 판단하면 은퇴를 결심한다. 그것이 60세든 50세든, 심지어 40대 후반이든 말이다.


나는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자주 고민해왔다. 한국은 고용 안정성이 높은 대신, 한 직장에서 오래 버티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은퇴를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미국은 직장을 자주 옮기고, 커리어를 재설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일에 대한 피로감이나 만족도 저하가 오면, 미련 없이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은퇴도 그 연장선이다.


또 하나의 차이는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신뢰다. 한국에서는 국민연금이나 퇴직금만으로 노후를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 크다. 그래서 은퇴를 미루고, 더 오래 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은 개인 책임이 크지만, 다양한 금융상품과 제도로 은퇴 자금을 마련하는 문화가 이미 자리 잡아 있다. 결국 은퇴 결정은 스스로 세운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개인의 선택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에서는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일에서 손을 놓는 순간, 삶의 의미까지 잃어버리는 듯한 허탈감을 겪는 이들을 종종 본다. 미국에서는 은퇴 후 자아실현을 위한 활동, 봉사, 취미 생활 등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일과 삶의 균형,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개인차는 있다. 한국에서도 은퇴 후 자기계발과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미국에서도 생계 때문에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여전히 한국은 ‘돈이 될 때까지 일하는 것’, 미국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은퇴를 선택하는 것’이라는 흐름이 뚜렷하다.


나도 은퇴를 앞두고 있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길어졌지만, 한국인의 정서도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래서 은퇴를 준비하는 내 마음은 늘 두 문화 사이를 오간다. 더 벌어야 한다는 불안과 이제는 나를 위한 시간을 살아야 한다는 갈망이 엇갈린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있다. 은퇴는 돈만으로 결정하는 일이 아니며, 결국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라는 점이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이제야 조금씩 한국식 은퇴의 틀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리고 미국식 은퇴의 핵심,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한 선택’을 배워가고 있다. 그 과정이 곧 은퇴를 준비하는 진짜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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