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진짜 연애하시는 거예요?
조심스럽지만 어딘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 자식들이 중년을 넘긴 부모의 연애 소식을 들었을 때 흔히 보이는 반응이다. 당황, 걱정, 반가움, 그리고 약간의 질투까지. 부모 자식 사이에 금기로 여겨졌던 연애라는 단어가, 황혼기에 다시 등장하면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잠시 균열을 겪는다. 특히 재혼이 아닌 계약 동거라는 새로운 형태는 자녀들에게 낯설고, 당혹스럽다.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계산적이고, 동거라고 하기에는 느슨하며, 결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볍다. 도대체 이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자녀들이 부모의 연애에 대해 불편해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경제적 불안이다. 자녀 입장에서 부모의 재산, 노후 자금, 상속 문제는 민감한 영역이다. 특히 황혼기의 새로운 관계는 저 사람이 부모님의 재산을 노리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부모가 사랑에 빠진 감정을 이야기해도, 자녀들은 냉정하게 숫자를 계산한다.
둘째는 정서적 충돌이다. 부모가 여전히 이성적 매력을 느끼고, 누군가와 삶을 나누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부모는 늘 자녀를 중심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졌기에, 자녀 아닌 타인과 가까워지는 모습에 묘한 질투심과 소외감을 느낀다. 부모의 삶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은 곧 자녀로서의 자신의 위치가 변하는 일이다.
그러나 부모도 인간이다. 자녀를 키워내고, 오랜 세월을 살아내며, 이제는 자신의 삶을 돌볼 차례다. 황혼의 계약 동거는 단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경제적 안정, 건강 관리, 사회적 관계까지 고려한 ‘삶의 재설계’인 것이다. 자녀들이 부모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은 결국 자녀 자신이 성숙했다는 증거다. 부모를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녀로서의 마지막 성장이다. 물론 처음부터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충분한 대화와 투명한 정보 공유가 있다면, 오해는 풀리고 걱정은 줄어든다.
계약 동거는 전통적인 결혼과는 다르다. 재산 문제, 건강 돌봄, 생활 방식 등 현실적 조건을 명확히 하고, 감정적 부담은 최소화한다. 자녀 입장에서도 이는 안심할 수 있는 장치다. 특히 자녀의 상속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각자의 경제는 독립적으로 관리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 반대할 이유는 줄어든다. 또한 계약 동거는 기간을 정할 수 있다. 1년 단위, 혹은 건강 상태에 따른 재협의를 통해 유연하게 조정된다. 이는 자녀들에게 평생 책임이라는 막연한 불안을 덜어준다. 부모도 자녀도 서로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순간엔 함께할 수 있는 적정 거리를 찾는 것이다.
엄마가 행복한 걸 보고 싶다는 말은 많은 자녀들의 진심이다. 다만 그 행복의 모습이 자신이 예상한 것과 다를 때 혼란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부모가 건강하고, 웃고, 삶의 활력을 느낀다면 자녀 역시 마음이 편안해진다. 황혼의 계약 동거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다. 사랑도, 의무도, 소유도 아닌,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재정의하는 선택이다. 자녀가 부모의 선택을 이해하는 순간, 그 가족은 한 단계 더 건강한 관계로 나아간다. 부모는 자녀의 인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 자녀는 그런 부모를 보며 자신 역시 나이 들어가는 법을 배운다. 그것이야말로 부모가 남기는 마지막 교육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