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방식, 이별의 계약

by 라온재


함께 살기로 한 날처럼, 언젠가는 헤어질 날도 온다. 황혼의 계약 동거는 그 자체가 영원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정직하다.

지금 이 순간, 함께 살고 싶은가?

그 물음에 예라고 답하는 두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러니 이별도 마찬가지다. 그 선택이 존중되고, 준비되며, 무엇보다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도록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한다.


계약 동거는 애초부터 계약이라는 구조 안에서 시작된 관계다. 계약의 존재는 감정을 가두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해주는 장치였다. 그렇다면 그 마지막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이별은 준비되어야 한다. 사랑해서 시작했다면, 존중으로 끝낼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동거 계약서에는 이별에 대한 조항이 담겨 있다. 한쪽이 원하지 않거나, 건강·가정·경제 사유 등으로 동거 지속이 어려운 경우, 30일의 유예 기간을 둔다. 그 조항이 처음엔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별을 전제로 함께하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장은 언제든 나갈 수 있다는 선언이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나갈 것인가’에 대한 배려다.


실제 사례 중에는 말없이 사라진 동거인으로 인해 법적 분쟁이 생긴 경우도 있다. 어떤 이는 병원에 입원한 뒤 연락이 두절되었고, 어떤 이는 자녀의 반대로 돌연 퇴거를 당했다. 그렇게 남겨진 이들은 단지 관계의 종료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상처를 받았다.


그러니 우리는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아프기 전에, 끝나기 전에, 관계의 마지막까지 설계해야 한다. 감정을 정리할 시간, 생활을 나눌 기간, 그리고 남겨질 사람에 대한 예의를 함께 담아야 한다.


그가 떠난 뒤, 매일 아침 혼자 커피를 내리는 일에 익숙해지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빈자리는 쉽게 적응되지 않았지만, 그가 남겨둔 메모 한 장이 큰 위로가 되었다. 계약은 끝났지만, 함께한 시간이 참 고마웠어요. 다음 생에도 꼭 다시 만납시다. 계약은 종료되었지만, 관계는 그렇게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별을 설계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지막을 덜 아프게 해주었다.


계약 동거의 가치는 이별에 있다. 끝을 정해두고 시작하기에,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지고, 서로에 대한 존중이 유지된다. 이별을 탓하지 않고, 그 또한 인생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프레임. 그것이 황혼의 계약 동거가 가진 깊이다.


이제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사랑은 반드시 결혼일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관계는 끝나는 순간까지 함께 설계할 수 있다고. 혼자도 좋지만, 함께는 더 따뜻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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