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로서 미국에서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어느 한쪽으로만 말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감탄과 불만, 설렘과 외로움, 희망과 후회가 공존하는 이민자의 삶은 단순한 이분법으로 설명될 수 없다. 미국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고, 동시에 많은 것을 요구했다.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찾으며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조율 중이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신기함이었다. 넓은 도로, 다른 언어, 낯선 인종, 그리고 익숙지 않은 미소. 누구도 내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 무관심은 동시에 자유로 다가왔다. 무엇을 입든, 어떤 직업을 가졌든, 사람들은 나를 평가하지 않았다. 그 점에서 미국은 분명히 개방적인 나라였고, 나다움을 지킬 수 있는 사회였다. 그러나 그 자유 속에는 거리감도 함께 존재했다.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는 만큼, 따뜻한 관심도 적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조차, 기대도 안 되는 게 이곳의 룰 같았다.
일상 속의 언어는 언제나 장벽이었다. 표현은 단순하지만,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소통은 어렵다.
말을 알아듣는 것과 마음이 통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병원에서, 마트에서, 아이들의 학교에서 나는 다 알아듣는 척해야 했고, 그 속에서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는 새롭게 배우는 법도 익혔다. 모르면 물어보고, 실수해도 웃고 넘기고, 부족함을 감추기보다는 드러내는 용기를 배웠다. 그건 한국에서의 삶과는 또 다른 인간관계의 방식이었다.
미국의 교육 시스템은 한국과 많이 달랐다. 경쟁보다는 참여를 중시하고, 결과보다 과정을 강조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적고,
다양한 활동과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었다. 하지만 교육의 질은 지역과 소득에 따라 편차가 컸고, 대학 진학에는 여전히 경제적 부담과 전략적 준비가 요구됐다. 기회의 땅이지만, 그 기회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 시스템은 때때로 친절했고, 때로는 냉정했다. 의료보험이 없을 땐 감기 진료 하나도 부담스러웠고,
서류 하나 처리하는 데에도 복잡한 절차와 기다림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배우고, 서서히 제도를 익혀갈수록 이 사회의 운영 원리가 이해되었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도 보였다. 불친절 속에서 나만의 질서를 찾고, 제도 속에서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미국에서의 삶은 나를 스스로 살아가게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가족, 학교, 사회가 늘 지켜보는 눈이었다면, 이곳에서는 나를 스스로 설명해야 했고, 선택하고 책임져야 했다. 그 책임감은 무겁지만 동시에 성장의 기회였다. 누구의 자식, 누구의 아내, 누구의 아버지가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가게 만든 사회. 때때로 외롭지만, 그 외로움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민자의 삶은 계산처럼 흑백으로 나뉘지 않는다.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어느 순간에는 뒤바뀌고, 어느 날엔 공존한다. 그 속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시선으로 이 땅을 바라보느냐다. 비판은 가능하지만, 동시에 감사도 가능하다. 이민자는 늘 그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안고 살아간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완전히 적응했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새 이곳도 나의 일부가 되었고, 나 역시 이 땅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