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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와 땅콩

by 라온재

아침 식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커피잔을 한 번 들어 올리고, 오늘도 습관처럼 작은 그릇에 아몬드와 땅콩을 담는다. 미국 이민 후 병원 근무를 시작하면서, 그리고 이제 곧 은퇴를 앞두고, 내 식탁 위에는 늘 이 두 가지 견과류가 자리를 차지해왔다. 젊었을 때는 음식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아침은 그저 허기를 달래기 위한 시간, 간식은 입이 심심할 때 집어먹는 것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신체의 변화와 건강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면서 작은 선택 하나에도 의미를 두게 되었다.


특히 6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내가 매일 무엇을 먹는가가 하루의 컨디션을 결정한다는 걸 몸으로 체감한다. 병원에서 만나는 많은 어르신들이 늘 말한다. 젊을 때는 몰라요. 몸이 아프고 나서야 그때 왜 관리를 안 했는지 후회하지. 나 역시 그 말에 공감하며, 하루 한 줌의 아몬드와 땅콩을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 아몬드는 내 건강관리의 비밀병기 같은 존재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아몬드 몇 알이 이렇게 큰 힘을 주는지,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아몬드에는 심장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다고 한다. 실제로 건강검진 결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안정적일 때, 나는 속으로 ‘아몬드 덕분일 거야’ 하고 혼자 미소 짓는다. 비타민 E 덕분에 피부도 덜 건조해지고, 혈관 건강도 지켜준다니, 이만한 자연의 선물이 있을까. 땅콩은 조금 더 소박하고 익숙한 친구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고, 값도 저렴하다. 무엇보다 땅콩에는 단백질이 많아서, 나이가 들어 근육이 빠지는 것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한동안 운동을 게을리했을 때는 기운이 빠지고, 걷는 것도 힘들었는데,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 땅콩을 곁들이자 몸이 다시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땅콩에 들어있는 비타민 B군과 레시틴은 머리를 맑게 해준다는데, 치매가 걱정되는 이 시기엔 그저 고마울 뿐이다.


견과류를 씹으며 나는 하루의 계획을 세운다. 내일도 운동을 해야지, 은퇴 후에는 더 자주 산책하고, 틈틈이 여행을 떠나야지. 내 몸이 튼튼해야 비로소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다. 그 작은 준비와 관리가 바로 지금, 그리고 미래의 나를 위한 선물이다. 물론 견과류를 먹을 때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소금이나 설탕이 첨가되지 않은 무염 제품만을 고집한다. 하루에 한 줌, 그 이상은 과욕이다. 가끔은 땅콩버터를 블루베리와 함께 그릭요거트에 넣어 아침을 먹기도한다.. 이렇게 소박한 습관 하나가 내 삶을 얼마나 특별하게 만드는지,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아몬드와 땅콩을 천천히 씹는다. 이 두 작은 견과류가 내 삶에 건네주는 건강, 그리고 평온함을 소중히 느낀다. 특별한 보약이나 고가의 건강식품이 아니라, 매일매일 스스로 챙기는 작은 습관이야말로 진짜 노년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삶은 더욱 단순해지고, 그 안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이 선명해진다. 내 건강을 지켜주는 작은 친구들, 아몬드와 땅콩처럼 말이다.


P.S. 여행을 하면서 견과류를 배낭에 준비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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