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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세번의 터닝포인트

by 라온재


60년 넘게 살아오며 수많은 결정과 우연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그 중에서도 세 번의 선택은 터닝포인트라 부를 만하다. 단순한 결정이 아니었다. 용기와 결단, 때로는 배수진의 각오로 이뤄낸 전환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첫 번째 전환: 1987년,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1987년, 나는 23살, 대학 4학년 농과대학 학생이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졸업 후 농업 관련 기관이나 학교로의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나 역시 비슷한 고민 속에 있었지만, 미래의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 정보처리기사 1급 자격증에 도전했다.

그 결정은 내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 컴퓨터는 당시 농업 분야에서는 생소한 영역이었지만, 나는 기술이 곧 필수가 될 것이라 직감했다. 자격증을 취득한 후, 농촌진흥청에 발탁되어 통계와 데이터 관리, 프로그래밍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 첫 번째 선택이 이후의 공직 경력, 대학원 진학, 연구 분야 확장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기술은 내게 기회를 주었고, 나는 그 기회를 붙잡았다.


두 번째 전환: 2009년, 미국 영주권 취득


두 번째 전환점은 2009년, 45세의 나이에 찾아 왔다. 자녀 교육 문제로 미국행을 결심했고, 마침내 영주권을 취득하게 되었다. 단순한 이민이 아니었다. 삶의 뿌리를 옮기는, 커다란 모험이었다.

미국에서의 삶은 처음엔 낯설고 버거웠지만, 영주권이 있었기에 길을 열 수 있었다. 아이들은 미국 교육 시스템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갔고, 나는 주립대 교수직과 기업 연구원 경력을 거쳐 전혀 다른 커리어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으로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이 결정 덕분이었다. 이민은 나에게 더 넓은 시야와 유연한 사고방식을 안겨주었고, 인생 2막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세 번째 전환: 2016년, 미국 간호사 자격 취득


세 번째 전환점은 2016년, 52세의 나이에 찾아왔다. 교수, 연구원으로 살아온 길을 뒤로하고 나는 간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주저함도 있었지만, 미국 간호사 자격 취득은 생계뿐 아니라 노후까지 이어지는 삶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한 결정이었다.

간호사 자격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내가 사회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이후 정신병원에서 일하며 많은 사람들을 돌보고, 의료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자격이 내 은퇴 이후 삶의 기반이 되어준다는 점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 자격을 활용해 미국, 혹은 해외 미군기지 병원에서 일하며 여행과 일을 병행하는 ‘슬로우매딕’의 삶을 계획하고 있다.


결론: 결정의 순간이 만든 길


23세, 45세, 52세. 인생의 세 갈래 길목에서 나는 두려움보다 도전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나를 더 강하고 유연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특히 52세에 얻은 간호사 자격은 지금도 내게 일할 수 있는 자격과 건강한 노후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단지 자격증이 아니라, 내 삶의 연속성과 존엄을 지켜주는 ‘열쇠’인 셈이다.

곧 62세가 되는 나는 또 한 번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이번엔 일을 병행하며 여행하는 삶이다. 그 어떤 길보다 자유롭고, 동시에 단단한 기반 위에 서 있는 여정이다. 나는 이제, 어떤 선택이든 두렵지 않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변화’가 아니라,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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