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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의 이해

by 라온재

어릴 적 감기에 걸리면 어김없이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청진기로 가슴을 듣고, 목을 들여다보며 몇 마디 물어보더니 약을 처방해주었다. 부모님은 늘 물으셨다. 항생제도 같이 들어가 있나요? 그 말이 마치 주문처럼 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왠지 항생제를 먹으면 감기가 빨리 낫는 것 같고, 항생제가 없으면 뭔가 부족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조금씩 알게 된다. 항생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아무 때나 먹어도 되는 약도 아니라는 사실을.


항생제란 본래 세균을 죽이거나 증식을 억제하는 약물이다. 20세기 초, 페니실린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인류는 처음으로 세균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얻게 되었다. 폐렴, 결핵, 장티푸스, 매독 같은 감염병이 더 이상 죽음의 문턱이 아닌 것이 된 건, 바로 이 항생제 덕분이다. 그야말로 의학의 혁명이었다. 하지만 항생제는 바이러스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감기, 독감, 코로나19 같은 질병은 바이러스가 원인이기 때문에 항생제를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바이러스 감염에 항생제를 잘못 쓰면 부작용만 생기고, 장내 유익균이 파괴되며, 항생제 내성균이 생길 위험이 커진다. 항생제 내성은 지금 세계보건기구(WHO)가 가장 심각하게 경고하는 보건 위기 중 하나다. 감기 한 번에 무심코 항생제를 쓰는 습관이 결국, 어떤 사람에게는 나중에 정말 필요한 순간에 약이 통하지 않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 몸은 많은 경우 스스로 감염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항생제는 그 면역 체계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심각할 때, 즉 세균 감염이 뚜렷이 의심될 때 사용된다. 예를 들어 고열이 수일간 지속되고, 목 안이 곪는 편도선염이나 폐렴, 중이염, 요로감염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경우 의사는 체온, 염증 수치, 진찰 소견, 경우에 따라 피검사나 소변검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생제 처방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환자는 약만 빨리 주세요라고 말하고, 바쁜 진료 속에 항생제가 예방 차원으로 처방되기도 한다. 이런 현실이 결국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낳는다. 우리나라는 한때 세계에서 항생제를 가장 많이 쓰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그만큼 항생제를 너무 가볍게 여겨온 것이다.


항생제는 고마운 약이다. 때로는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신중하게 다뤄야 하는 약이기도 하다. 의사가 진단하고 판단했을 때만 복용하고, 처방된 기간만큼 정확히 복용한 뒤 남은 약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스스로 판단해서 남은 약을 다음 감기 때 먹는다거나, 지인에게 권유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사소한 판단이, 장기적으로 우리 몸과 사회를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이제는 빨리 낫고 싶은 마음보다 제대로 낫는 방법을 선택해야 할 때다. 항생제는 무기가 아니라 도구다. 우리가 그 도구를 잘 사용할 수 있을 때, 건강은 더 오래,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 적당히 무서워하고, 적당히 존중하는 것, 그게 항생제를 대하는 현명한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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