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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약의 정체

by 라온재


어릴 적 넘어져 무릎이 까지면 어김없이 엄마가 꺼내던 것이 있었다. 작은 유리병, 속엔 붉은 액체. 면봉에 묻혀 상처 위에 톡톡 두드릴 때마다 따끔거리는 고통 속에서도 안도감이 따라왔다. 그 붉은 액체는 아이들에게 하나의 마법 같은 존재였다. 이름도 정확히 모르면서 그냥 빨간약이라고 불렀다.


빨간약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사실 이 빨간약의 진짜 이름은 포비돈 요오드(Povidone-Iodine), 상표명으로는 베타딘(Betadine)이다. 과거에는 머큐로크롬(Mercurochrome)이라는 붉은 소독약이 쓰이기도 했지만, 수은 성분 문제로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빨간약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부분 포비돈 요오드 계열의 소독제이다.


이 약은 요오드(Iodine)라는 원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요오드는 강력한 산화작용을 통해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등을 죽이는 광범위 살균제로 알려져 있다. 수술 전 의사의 손을 닦는 장면이나, 수술 부위를 닦을 때 붉게 칠하는 장면을 본 적 있을 것이다. 그 붉은 색이 바로 이 약 때문이다.


그럼 왜 빨간색일까? 요오드는 원래 어두운 갈색을 띠는데, 포비돈이라는 성분과 결합해 수용성으로 만들면 약간 붉은빛을 띠게 된다. 이 색은 시각적으로 소독됐다는 안도감을 주기도 하고, 실제로 도포한 부위를 식별하기 쉽게 도와준다.


하지만 이 만능 소독약에도 맹점은 있다. 상처의 조직 재생을 방해하거나, 과하게 사용하면 피부 자극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깊은 상처나 화상, 눈 주위에는 사용을 피하는 것이 좋다. 더불어 요오드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요즘은 병원에서도 무조건 포비돈 요오드만 쓰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클로르헥시딘(Chlorhexidine) 같은 대체 소독제를 쓰기도 한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빨간약은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는 이 약을 이용한 가글제가 일시적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물론 그 효과에 대해서는 과학적 논란이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은 포비돈 요오드를 1차 소독제로 신뢰하고 있다.


어쩌면 빨간약은 단순한 약이 아니다. 그것은 한 세대가 공유한 치유의 기억이자, 엄마 손길의 따뜻함을 떠올리게 하는 감정의 상징이다. 상처에 톡톡 묻히던 그 붉은 액체 속엔 우리 어린 시절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감싸주던 손길이 함께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여전히 그 약을 이름 대신 빨간약이라 부른다. 너무 익숙해서, 너무 소중해서, 굳이 이름이 필요 없는 그런 존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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