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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사랑

by 라온재

사람의 마음은 바람처럼 변하고, 파도처럼 뒤집힌다.

한 남자가 있었다. 그가 사랑한 이유는 단순했다. 한 여자의 입술이, 마치 석양 속 붉은 노을처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 입술은 봄날 첫 꽃잎처럼 떨렸고, 한 번 웃으면 온 세상이 환해졌다. 그는 그 입술을 영원히 곁에 두고 싶었다. 수차례의 고백 끝에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았고,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처음 몇 해 동안, 그는 매일 아침 그 입술을 보며 눈을 떴다. 세상이 무너져도 그 곁만은 천국 같았다. 그러나 세월은 은밀한 도둑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는 그 입술보다 덜 완벽한 코에 시선이 머물렀다. 결혼이라는 배가 항해를 계속하는 동안, 그의 눈은 점점 바다의 빛을 잃고 파도의 거친 면만 바라보게 되었다. 입술의 노을은 서서히 저물고, 코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 그 역시 입술이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했다. 그녀와 키스를 할 수 있다면, 세상 끝에라도 가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닿지 못한 별처럼 멀리 있었다. 세월이 흘러 그는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렸지만, 평범한 나날 속에서 문득문득 그 별빛이 가슴 속을 스쳤다. 그녀의 입술은 변하지 않은 채,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마음 속 유리병 속에 보존되어 있었다.


만약 두 여자가 같은 인물이었다면—사랑을 이루었던 남자는 세월 속에서 입술의 아름다움을 잃었고,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자는 그 아름다움을 평생 간직했다. 이루어진 사랑은 현실 속에서 옅어지고, 이루지 못한 사랑은 기억 속에서 더욱 빛난다.


단테가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를 그린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 사랑은 손끝에 닿지 않았기에 영원했고, 현실이 닿지 못한 자리에 천국의 형상이 피어났다.

로미오와 줄리엣, 단테와 베아트리체… 세상을 울린 사랑 이야기 대부분은, 완성되지 않았기에 완벽한 사랑이었다.


사랑은 참 묘하다. 품에 안으면 변하고, 놓치면 변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순간의 사랑은 언젠가 숨을 고르지만, 기억 속의 사랑은 죽을 때까지 숨을 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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