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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

by 라온재

병원에서 채혈이나 정맥 주사를 놓을 때, 의료진이 먼저 하는 일은 혈관을 찾는 것이다. 겉으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정맥이 잘 보이지 않거나 잡히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 과정이 꽤나 긴 여정이 된다. 팔꿈치 안쪽을 먼저 살피는 이유는 이곳에 굵고 안정적인 정맥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정맥이 서로 연결된 구조라 채혈 바늘을 넣었을 때 혈액이 잘 나오고, 무엇보다 신경이나 동맥과 거리가 있어 안전하다. 팔을 곧게 펴면 피부가 팽팽해져 혈관이 잘 움직이지 않고, 바늘이 고정되기 쉬운 것도 장점이다. 반면 손목 쪽 혈관은 겉으로 도드라져 보여도 움직임이 많고, 신경과 동맥이 가까워 바늘이 잘못 들어가면 통증과 손상 위험이 크다. 혈관이 가늘어 여러 개의 시험관에 피를 뽑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금방 막히기도 한다.


정맥 주사는 조금 다르다. 채혈은 짧게 끝나지만, 정맥 주사는 수액이나 약물을 장시간 주입해야 하므로 팔을 구부렸다 펼 때 관이 눌리거나 빠질 위험이 적은 부위를 선호한다. 그래서 손등과 손목 위쪽 혈관을 많이 쓴다. 이곳은 움직임이 자유롭고, 팔을 구부려도 주입이 끊기지 않는다. 하지만 대량 수액이나 수혈처럼 빠른 주입이 필요한 경우에는 다시 팔꿈치 안쪽이 선택된다. 응급 상황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이곳이 우선된다.


문제는 혈관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혈관이 선천적으로 가늘거나, 피부가 두껍거나, 지방층이 두꺼운 경우, 혹은 탈수 상태에 있는 경우 혈관은 더 깊숙이 숨는다. 이런 환자들은 채혈이나 IV 시작 전에 여러 번 바늘을 찌르는 고생을 겪는다. 바늘 자국이 팔 여기저기에 남고, 시도 때마다 통증이 쌓인다. 특히 과거 화학요법 치료나 장기간의 정맥 주사로 인해 혈관이 딱딱해진 사람들은 더욱 어렵다. 의료진은 손등, 팔 안쪽, 심지어 발등까지 차례로 시도하며, 때로는 초음파 장비를 동원해 숨어 있는 혈관을 찾아낸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한 번 찌르면 끝일 것 같은 절차도, 누군가에게는 두려움과 인내가 필요한 시간이 된다. 의료진이 바늘을 들고 팔을 이리저리 살피는 순간은 단순한 자리 고르기가 아니라, 환자에게 가장 안전하고 덜 아픈 길을 찾는 탐색이다. 혈관이 잘 보이는 사람에겐 몇 초의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랜 기다림과 작은 용기가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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