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고

by lapin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는 마법같다라는 표현보다는 밀도가 높다는 표현이 어울릴거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사코를 제외하고 해피아워와 드라이브 마이카를 생각했을때

일반적으로 평균 상영시간보다 긴 상영시간을 가졌지만 영화가 가진 밀도는 높다고 볼수 있을거 같다


정확하게는 대사가 가지는 무게가 높기 때문에 영화가 가지는 시퀀스 혹은 장면 하나하나 밀도가 높다고 볼수 있을듯 한데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부분 러닝 타임이 긴 영화들을 보면 장면이 가지는 밀도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는 그렇지 않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고 든 첫번째 생각은 이 영화의 밀도는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장면 하나하나 극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음과 동시에 이 영화가 가진 주제를 사족없이 풀어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구성을 생각해 봤을때

총 3가지 구성이 있다고 말할수 있겠다

가호쿠가 가지는 이야기가 있을것이고 오토가 말하는 이야기 미사키가 말하는 이야기 이렇게 나뉠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들은 영화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수 있는데

표면적으로는 가호쿠가 가지는 이야기의 형식이 가장 먼저 보이고 어쩌면 알랭 레네 감독의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에서 나온것 처럼

배우가 연기를 함으로써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이 비슷하다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주제가 같지는 않다


왜 가호쿠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연극을 하게된 것일까

그것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에 있다고 생각이 든다

이 영화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언어를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해 보이는데

중심적 가호쿠의 이야기를 오토의 이야기와 같이 생각해 볼수 있겠다


가호쿠는 오토를 사랑하지만 오토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모습을 목격한다

하지만 오토와의 관계가 틀어질까 두려워 말을 하지 못하는데

이는 자신의 언어 혹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함으로 써 오히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가호쿠와 오토가 오래 전 아이를 잃고 관계를 통해서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과도 이어진다고 볼수 있다

가호쿠는 이야기를 못하고 오토는 가호쿠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목소리가 아닌 몸의 언어

즉 육체 관계에서만 서로 소통이 가능해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오토의 이야기를 대입해 보면 오토는 성관계중에만 자신의 드라마 혹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한다고 할 수 있겠다

관계중 드라마 각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가호쿠가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가 그걸 각본으로 써내려 가는것인데

영화의 초반 오토의 야마가 이야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여자아이는 야마가의 마음 속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고 마음을 공유하고 싶어하고 어느날 야마가의 집에 침입한 강도를 살해하게 되는데

살인 이후 야마가의 집에서의 유일한 변화는 CCTV가 설치된 것이고 여자아이는 CCTV를 향해 내가 죽였다 라고 하는 이야기이다

야마가 이야기는 사실상 오토와 가호쿠 이야기의 은유로 볼수 있을거 같다

이야기에서 야마가 혹은 야마가가 살고 있는 집은 가호쿠로 볼 수 있고 전생이 칠성장어 였던 여자아이는 오토로 볼수 있을 것이다

오토는 가호쿠의 마음을 보고 싶어 하는거 같다

하지만 가호쿠와의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가호쿠 마음속에 커다란 상처가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가호쿠의 마음이 어떠한지는 정확히 알기 힘들다

그렇기 떄문에 오토는 가호쿠가 자신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것을 알고 있든 알지 못했던 자신의 생각을 말해 줬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가호쿠와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토는 가호쿠와의 육체 관계에서만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된 것인데

이는 여자아이가 야마가의 집에서 자신의 물건과 야마가의 물건을 서로 하나씩 가지고 가고 놓고가며 섞여가는 것으로 은유된다고도 볼수 있을것이다

둘 사이 큰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가호쿠는 야마가 반응처럼 그저 가만히 CCTV로 감시 하듯 아무 반응도 하지 않게 된다고 오토는 이야기를 통해 말한다

결국 오토는 가호쿠의 마음을 알고 싶어 했지만 가호쿠와 소통하는 방법은 육체 관계 밖에 없었으며 가호쿠는 오토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어야 한다고 깨닫게된다

즉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야 자기 자신의 마음을 알수 있고 상대방의 반응을 보아야 소통이 된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미사키의 이야기에도 적용이 된다

미사키는 어머니와 살다 산사태로 어머니를 잃은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 어머니의 다른 인격 사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사키의 어머니는 미사키를 폭력적으로 대했지만

가끔씩 어쩌면 어머니의 진심이 다른 인격인 사치를 통해 나온다고 이야기 한다고 말한다

미사키는 어머니와 소통이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치를 볼때 마다 어머니가 가엽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지옥과도 같은 삶에서 진심을 말할수 있는 그 순간만큼을 말이다

결국 이 이야기에서도 미사키는 어머니를 향해 목소리를 내었어야 된다고 영화는 말한다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얼마나 아파했는지 말이다

그 목소리를 내어야되는 상대방이 떠난후에는 결국 후회만 남을 뿐이라는 것을

영화에서 가호쿠와 미사키는 유사 부녀 관계처럼 보인다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자신의 목소리 들려줘야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다

목소리를 들려줘야할 사람이 떠난 후 그저 살아가는 것 밖에 할수 없는 같은 분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떄문에

가호쿠는 미사키와 같은 아픔을 공감 할 수 있으며 가호쿠는 미사키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할수 있다

결국 가호쿠와 같은 차를 타고가는 미사키를 비추며 영화가 끝나는 것은 같은 차를 타며 같은 상처에 공감하던 사람들 그리고 그저 살아 갈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기에 가호쿠와 같은 차를 타고 간다고 말할수 있을거 같다

가호쿠가 하는 연극이 각자 다른 언어로 하는 것은 사람마다 각자의 언어가 있고 그 언어를 표출해야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이야기는 이야기되어야 하고 언어는 각자의 언어로 말해야 하며 자신 내면의 진심을 가감없이 이야기를 해야 서로 소통이 된다고 말을 한다

그렇게 말하지 못한 언어들은 다시 말할 수 없으며 그저 살아가기만 해야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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