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헐리우드에서 각본을 잘 쓰는 감독의 이름을 나열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이 하나가 있다
바로 그레타 거윅이다
개인적으로는 프란시스 하에서 배우로서의 모습을 먼저 보았지만
너무나 솔직하면서도 주체적인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배우에서 감독을 한다고 했을때도 사실 의심을 많이 하지 않았다
연인이자 파트너로 노아 바움벡과 함께한 각본들을 보면 정말 훌륭한 각본들이 많다
그렇게 첫 감독 데뷔작인 '레이디버드'와 차기작인 작은 아씨들까지 보고 나면
확실히 캐릭터 서사에 대해 어떻게 풀어나갈지 아는 사람이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영화 '바비'의 제작 소식이 들렸을때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섰지만 감독이 그레타 거윅이라고 알게 되었을 때 걱정은 기대로 바뀌었다
훌륭하게 여성 서사를 다뤘던 감독이 다루는 '바비'는 어떤 영화일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는 주장하는 영화라기보다 권유하는 영화라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한다
그 이유는 중요한 부분에서 등장하는 ;여러 선택' 때문이다
대놓고 오마주한 매트릭스처럼 바비랜드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현실세계를 갈 것인가를 신발을 선택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결말부에서는 여성과 남성 그리고 특정 사상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나다움'을 선택하는 장면에서 보여진다.
영화 속 중요한 테마는 '불편함을 안락함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초반의 바비가 뒷꿈치를 항상들고 생활을 하며 어느날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니까 뒷꿈치가 내려와 넘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켄이 퍼뜨린 가부장제 켄돔에서의 바비들은 머리를 안써서 좋다라고 하며 켄들의 시중을 들어주는 장면들이 그렇다
과연 우리가 누리는 안락함과 불편함이 당연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바비랜드는 완벽한 페미니즘 세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덧씌어진 세계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현실세계는 물론 지금 우리가 살수 있는 세계이겠지만 많이 없어 졌다고 하여도 일부 가부장제의 잔재가 존재하는 그런곳으로 표현이 되고 있다
그런 상반된 세계를 통해 두 세계모두 유토피아는 아니라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정확하게는 바비랜드는 현실세계의 반대버전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남성은 여성으로 여성은 남성으로 표현된 세계라 볼수 있겠다
영화 속 대사를 비틀어서 이야기하면 정말 모두 반대인 세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바비의 세계에서 소외된 켄 그런 켄은 바비를 통해 자신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러다 켄은 현실세계에서 배워온 가부장제를 바비랜드에 퍼뜨린다
결국 치우쳐진 세상에서는 반드시 소외된 사람들이 생겨나며 소외된 사람들은 자신을 소외되지 않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다
방금 얘기 했듯이 남녀가 바뀐 세상에서의 가부장제를 퍼뜨린다는 것이 페미니즘을 의미한다 볼수 있겠다는 의미처럼도 보이겠지만
꼭 가부장제의 반대가 페미니즘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페미니즘을 대상으로 생각하기 보다 소외된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을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아닐까 한다
그중에서도 켄은 가부장제를 생각했다고 볼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바비랜드는 켄의 가부장제에 물들이지만 바비들의 계몽과 맨스플레인을 역이용한 방법으로 다시 바비랜드를 바비들이 되찾는다
그러면서도 지금과는 다르게 누구도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면 안된다고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바비는 켄에게 하는 대사들이 있다
바비 그리고 켄이 아니라 켄 자신에 대해 생각하라는 것이다
결국 여성주의와 남성주의를 떠나 자기자신을 찾으라는 것이다
특히나 마텔의 창업자 루스 핸들러가 나오는 장면이 그렇다
영화 속 주인공이 전형적인 바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마고로비를 캐스팅한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이 든다
계속해서 자신은 전형적인 바비라고 이야기한다
영화속에서는 대통령 바비, 우주 비행사 바비, 의사 바비 등등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전형적인 바비이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바비이지만 오히려 반대로 사회 정해놓은 이미지로 만들어진 바비이기 때문에 의미를 만들기 보다 씌어진 바비로 말이다
그런 바비가 결국 중요한 것은 여성적인, 남성적인, 전형적인 이라는 단어가 아니고 나에 대한 나다움이라고 깨닫는 이야기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의미를 만들도록 만들어 졌던 바비가 사회가 전형적이고 편리하게 정의한 의미들이 떳씌어진 바비로 바뀌었다가 다시 의미를 만드는 바비로 된다는 이야기이다
결말부 바비는 어디론가 향하며 어느 건물의 프론트에서 자신의 이름을 바버라 핸들러라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를 만나러 왔다고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것은 바비 자신을 바버라 핸들러라 칭한다는 것이다
'바버라 핸들러'는 루스 핸들러의 딸 이름임과 동시에 딸을 위해 바비를 만들 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루스 핸들러가 바비를 딸처럼 생각한것도 있겠지만 루스 핸들러는 바비가 의미가 덧쒸어진 존재가 아닌 의미를 만드는 존재가 되길 바랬던 점에서 딸의 이름은 바버라 핸들러라는 이름을 쓰게되었고 프론트에서 누군다를 만나러 왔다고 이야기하지만 이야기 맥락상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정확하게 알아야할 필요는 없다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인생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바비가 되었기에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 우리가 알아야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결국 다 보고나면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이 아예없지는 않다고 느꼈다
어떤 사상과 주장이든 너무 강하면 분명 무시당하거나 소외당하는 이들이 있다고 보여진다는 것이다
성별이 여자이든 남자이든 혹은 제3의 성별이든 전형적이라는 말에 그리고 사회에 이미지속에 너무 얽메이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의미를 만들고 삶을 만드는 것이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방향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