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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양가성, 그 틈에서

당신에게 죽음이란 단어는 어떠한가요?

by La plage


애셔 브라운 드랜드, <Landscape—Scene from "Thanatopsis" >, 1850, 캔버스에 유화, 100.3x154.9cm, Metropolitan Museum


당신은 이 고즈넉한 풍경화에서 무엇을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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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광활한 자연이지 않을까. 이 작품의 수평선 너머에 보이는 해가 보이는 풍경은 일출의 풍경인지 일몰의 풍경인지 알 수 없지만, 전경의 풍경과의 뚜렷한 명암의 대비는 여실히 느껴진다. 그리고 오른쪽의 암산은 가파르게 깎여 왼쪽의 나지막한 초원과 대비되며, 그 초원 사이로 바다 또는 광활한 호수로 추정되는 곳을 향해 흘러가는 강의 모습이 보인다.


이러한 자연 속에 사람들과 동물들이 한데 어우러져있다. 자연의 의미는 무엇일까? 온라인에 검색해 보면 자연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 의식이나 경험의 대상인 현상의 전체 등을 의미한다고 한다. 마치 이 작품은 자연의 범주 안에 사람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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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셔 브라운 드랜드(Asher Brown Durand, 1796-1886)는 무슨 의도로 이 작품을 작업했을까. 순수하게 자연 풍경을 묘사하고자 했던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죽은 듯이 늘어져있는 가지들과 푸릇한 이파리들이 있는 나무들의 공존, 그리고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양한 고대 석관들 마지막으로 유골과 염소의 형상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작품은 윌리엄 컬런 브라이언트(William Cullen Bryant, 1794-1878)의 『죽음에 관하여 Thanatopsis 』(1821)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나, 단순히 문학 작품을 회화 작품으로 형상화한 것이 아닌 동료 화가였던 토마스 콜(Thomas Cole, 1801–1848)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취지도 담겨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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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드랜드가 바라본 죽음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다르겠지만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거나 언급할 때에 흔히 그 공기는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죽음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또한 존재하지만, 이 또한 죽음이 주는 무거운 분위기가 환기되는 느낌으로 와닿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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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랜드에게 자연의 풍경이란 신의 흔적이자 심신을 치유하고 정신적인 위안과 고양된 희망을 받는 공간이었다.2) 그는 수풀이 우거진 형태를 바라보며 “천상의 캐노피”라고 언급한 적 있는데 그의 작품에서 수풀을 통한 아치형 프레임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그 밑에서 행해지고 있는 장례식이 신성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염소 2마리는 서양에서 전통적으로 재물을 의미하면서도 동시에 죽음을 의미하는 엠블럼이다.3) 이 밖에도 살바토르 로사와 같이 생명력이 느껴지는 나뭇잎들의 형상과 시든 듯한 나뭇잎들의 형상의 공존, 어두운 그림자를 통한 죽음의 암시와 동시에 밝은 초원의 풍경을 명료하게 표현함으로써 죽음과 생에 대한 분리 등을 통해 죽음과 생의 공존이 보인다. 더불어, 통상적으로 예수를 의미하는 목동과 백성을 상징하는 양의 모습이 묘사되었으며, 유골을 비추고 있는 밝은 빛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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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를 하나의 작품에 교차시킨 화가 애셔 브라운 드랜드.

그는 죽음을 멜랑콜리하게 바라보기보다는 낙관적으로 바라본 듯하다. 그는 기독교에서도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며 죽음을 신의 품으로 회귀로 바라보며 누군가의 죽음이 비단 비관적인 일만은 아님을 암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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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떠한가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누군가의 죽음, 그로 인한 부재가 느껴질 때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그들을 원망하거나 섭섭함이 밀려온 적, 혹은 그리워 서글펐던 적은 없나요?


누군가의 자의적인 죽음은 그 사람에게는 안식을 향한 길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죽음은 남겨진 이들에게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았겠지요.


자연의 섭리에 따른 죽음 또한 가슴 아픈 일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아픔은 조금씩 옅어져 흉터로 남을지도 모릅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같지만,

그 무게를 느끼는 방식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네요.


그렇다면 —

당신에게 ‘죽음’은 어떤 얼굴로 다가오나요?



당신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In every ending, the soul finds a mirror of its beginning.
And those who remain, carry its reflection — quietly, painfully, beautifu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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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드랜드가 <“죽음에 관하여”의 한 장면>(1850)을 전시할 때 카탈로그에 기재한 브라이언트의 의 『죽음에 관하여』(1821) 일부입니다.
… 태양처럼
오래된 견고한 바위뼈대의 언덕들-그 사이로
생각에 잠긴 듯 고요히 뻗쳐있는 계곡들,
장엄한 숲들-위엄 있게 나아가는
강들과, 초원을 녹색으로 물들이며
졸졸 흘러가는 시냇물과, 사방에서 흘러온
옛 대양의 회색빛 우울한 폐허도-
모두 그 거대한 인간 무덤의
엄숙한 장식일 뿐이다.
(William Cullen Bryant, Thanatopsis (1821), 38-46행)


1) Albert Gardner et al., American Paintings: A Catalogue of the Collection of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Vol. 1, Painters born by 1815 (New-York: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1965), 211.

2) John Dillenberger, The Visual Arts and Christianity in America: From the Colonial Periodto to the Present (Wipf and Stock Publishers, 2004), 76.; A. B. Durand, “Letters on Landscape Painting. No. ,” The Crayon 1:5 (January 1855): 66, 145-46.

3) John Foster, “The Scapegoat and the Underdog,” Life of the Spirit (1946-1964) 16:189(1962): 430.



2022년에 소논문으로 다루었던 주제를 다시 꺼내어, 제 생각과 마음을 더해 새롭게 풀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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