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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혼란스러운가요?

산수화가 주는 여운

by La plage


김홍도, 소림명월도, 지본담채, 1796, 호암미술관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직접 작품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숲속으로의 여행을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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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거리는 마치 흔한 동네 야산 같지만 도심과 떨어진 외딴 지역의 산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시들어버린 나무의 모습이 가을 중엽의 고적함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안개와 함께 젖어있는 듯한 이 흙길은 스산한 초겨울에 느낄 수 있는 차가운 저녁의 시간을 더욱 느끼게 한다. 유일한 빛이라고는 나무 사이에 걸려있는 달이 유일하다. 주변이 울창하지는 않아서 공허 하지만 동시에 나무들이 밀집되어 있는 이 숲길 속에서 나는 길을 잃었나?


이곳은 어떠한 장소이긴 하지만 마치 누군가의 고독한 마음속에 직접 들어온 것만 같은 기분을 준다. 누군가는 누구일까? 그냥 우리 모두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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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거닐다 보니 내가 ‘어디’로 가야 하며 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 알맞은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얼기설기 하나로 엉켜 있는 저 나무들은 마치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나는 ‘어떠한지’ 등과 같은 방황하는 내 속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세상사, 고민, 앞으로의 방향 등과 같은 것에는 정답이 없다. 그저 본인에게 더 알맞다고 생각하는 길을 선택하고 직접 그 선택에 대한 결과에 몸소 부딪혀보며 깨달음을 얻고 다시 새로운 고민에 빠지는 굴레를 반복해야 할 것을 안다. 그렇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수용은 다른 문제가 아닐까? ‘알맞은 길’ 그것의 선택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과연 어떤 것을 알맞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 나아가면서 이루어질 모든 선택에 던져지는 의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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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어 보이는 숲길이지만, 사실 이 숲길은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잖아. 이 주변의 생명 자체가 온전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도래할 새로운 계절 그리고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때면 같은 자리에 푸르른 나무들이 이 숲길을 가득 채워줄 것이 분명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나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해 보면, 사실 내 모습이 안개에 낀 듯이 잘 그려지지 않아.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면 추운 겨울에 얼어있는 길을 뚫고 새싹을 피우는 자연처럼 스스로를 깰 수 있는 마음부터 준비되어야겠지.


그런 성장은 누구나 할 수 있어, 단지 사람마다 그 타이밍이 다를 뿐. 그 타이밍의 차이를 나는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직은 못 받아들여서 혼란스러운 것 같아.

당신은 어떤 계절에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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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김홍도의 「병진년화첩」 中 《소림명월도》이다. 2019년의 삼성 리움 미술관의 상설전시관에서는 다양한 한국 미술 작품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 김홍도의 「병진년화첩」 中 《소림명월도》, 《백로횡답》 그리고 최북의 《유곡후동도》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그중에서 김홍도의 「병진년화첩」 中 《소림명월도》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김홍도의 「병진년화첩」 中 《소림명월도》는 나에게 중의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김홍도는 한국미술사의 흐름에서 언제나 언급되는 화가이며, 이 작품보다는 다른 작품들로 주로 주목을 받아왔다. 이 작품은 제목을 통해 ‘달’을 표현한 작품임을 명확히 보여주지만, 내가 처음 이 작품을 접하였을 때에는 다소 낯설었던 작품이었던 만큼 나에게는 화가에 대한 정보를 제외하고는 이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또한 없었다.


나는 작품을 감상할 때에 제목을 먼저 확인하기보다는 작품 본연을 먼저 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작품 속에 나타난 원의 형태에 대해 달 또는 해라고 읽었다.


작품 속 원을 떠오르는 해로 상정하면 어떻고 달로 상정하면 어떨까? 작품의 해석, 감상이 달라질까.


해로 생각해 보면, 마치 깊은 밤을 보낸 이후 잠들어있던 생명체들이 곧 깨어날 것을 상징하듯 서서히 해가 떠오르는 것을 통해서 세상을 밝히고 있다고 느껴지고, 달로 볼 경우에는 오롯이 개인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때임을 알려주는 듯한 초저녁의 떠오르는 달의 형상으로 느껴진다. 이렇듯 개개인의 해석은 작품 속 원을 무엇으로 상정하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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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당신은 무엇을 느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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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의 본연의 매력은 명도의 대비가 아닐까?

당시 전시되어 있던 김홍도의 작품을 실제로 접했을 때에는 정면에서는 작품에 담긴 자연풍경의 형상이 3차원적인 묘사보다는 평면적이라고 와닿았으나, 작품의 옆면에 서서 바라보면 작품의 중앙 부분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홍도 특유의 여백 활용법이 주는 효과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중앙으로 감상자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주변의 풍경과 명확히 대비시키는 이 작품에 대해서 나는 무엇을 느꼈던가.


나는 이 작품을 통해 ‘고민과 선택’에 대해 연연할 것이 아닌 일상 속에서 답을 찾아나가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며, 모든 것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함을 깊게 깨우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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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는 흔히 와유로 읽히고는 한다. 또는 잘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 그저 안빈낙도의 심리로 풍경을 찾아 나선 화가들의 흔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사실 서양화에서도 풍경화는 작품에 담긴 메시지 또는 의도가 과연 있냐는 반문을 받고는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풍경을 담은 그런 작품들은 새삼 그 본질, 입지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예술이 꼭 메시지를 품고 있어야만 예술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산수화 그리고 풍경화가 엄연히 주고자 하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풍경화보다는 산수화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조금 더 어려울 수 있다. 동화 같은 풍경화보다 산수화는 좀 더 초월적인 면모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럴 때는 작품 속에 직접 본인을 투영시켜서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눈을 감고 주변의 풍경이 마치 산수화 속에서 보이던 풍경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 상상 속에서 무슨 기분을 느꼈는가, 그게 그 작품이 주고자 하는 의도일 수 있을 것이다.


2019년에 소논문으로 다루었던 주제를 다시 꺼내어, 제 생각과 마음을 더해 새롭게 풀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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