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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환 Feb 20. 2022

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 -2

브뤼노 몽생종 저


예술의 가시적인 부분에 대하여


  책의 몇몇 부분에 평소에 해오던 생각과 강하게 상충되는 입장도 적잖이 보여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읽을 수 있었는데, 일례로 예전에 단편적인 글로 피력한 바 있는 부분이지만 나는 아티스트의 표정과 그가 취하는 모든 모션이 그의 예술적 행동 범위 안에 당연스럽게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공연은 비단 청각적인 경험이 아닌 다분히 공감각적인 경험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스비야토슬라프 리흐테르는 매 공연 공연장의 모든 불을 끄고 촛불 하나에 의지하여 연주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책에서 그는 그러한 행동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청중이 듣는 것을 방해하면 안된다. 내가 이제 어둠 속에서 연주를 하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중략) 피아니스트의 손이나 얼굴을 바라보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의 손이나 얼굴은 그저 어떤 작품을 연주하는 데에 들이는 정성과 노력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내가 쉽게 그와 의견을 합치할 수 없을 것 같다.


"예술가의 표정". 촛불에 의지하여 연주하는 리흐테르


"순수예술" 을 지향하다

  나는 평소에 나 자신을 강경한 “순수예술지향주의자”로 고려(consider) 하곤 한다. 음악, 특히나 클래식 음악같은 경우에는 악보에 무엇이 적혀있냐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좋은 해석과 좋지 못한 해석은 섬세한 악보상의 표기를 살리느냐 살리지 못하고 뭉뚱그려 넘어가느냐로 결정된다. 또 악보가 여백이 많은 경우, 달리 말해 연주자들의 자유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작품들은 사람마다의 보는 시선이 달라지기도 한다. 일례로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음악같은 경우 알레그로, 안단테, 프레스토 등 곡의 속도감을 명시하는 빠르기말이 표기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천차만별의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데, 같은 곡이어도 해석에 따라 아예 다른 곡처럼 들리기도 한다. 한 작곡가의 인생 안에서도 어느 시기인가에 따라 또 해석이 급격히 달라지곤 한다. 가령 캐나다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경우 초기 바흐 해석과 후기 바흐 해석이 매우 상이하다고 평가된다.



바흐 "영국 모음곡" BWV806. 템포 표기가 없다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1권. 마찬가지로 템포 표기가 없음을 볼 수 있다.



글렌 굴드, "골드베르크 변주곡" 1955년 음반, 1981년 음반, 생전의 모습


  이토록 고전 음악에서는 작곡가가 원전 악보에 어떤 재료들을 그려넣었는지가 중한 무게를 지닌다. 그래서 나는 강경한 태도로 음악을 해석할때의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리흐테르와 나는 예술을 보는 시각이 많은 면에서 사뭇 닮아있었다. (물론 결정적인 차이는 그는 피아니스트고 나는 아니라는 것이지만 말이다.)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음악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하는 것이 내가 규정한 순수예술지향주의다. “악보를 있는 그대로 읽어내는 것” 은 리흐테르의 기준에서 가장 잘 된 연주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는 원곡의 편곡을 극도로 혐오했는데, 그 예시로 제시한 작품이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편곡의 폐해에 대하여 역설한다고 쳤을때 거두절미하고 가장 먼저 내어놓을 작품과 같아서 꽤나 인상깊었다. 바로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다. 이 작품은 피아노곡으로 쓰여졌지만 라벨이 오케스트라곡으로 편곡한 바 있다. 전자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함유하고 있는 러시아적 걸작이나, 후자의 작품은 언제 들어도 썩 경쾌하지가 않다. 원작이 너무나 심오하고 아름답기에 그런것이다.


피아니스트 지용,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구스타보 두다멜,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라벨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전람회의 그림"

리흐테르는 인터뷰에서

 “나는 라벨을 무척 좋아하지만, 무소르크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을 그가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한 것은 혐오스러운 일로 여긴다.『전람회의 그림 』은 러시아의 피아노곡 가운데 가장 심오한 걸작이다. 라벨의 편곡은 허울만 근사하게 해서 이 걸작의 품격을 떨어트린 끔찍한 졸작이다.”


 라고 묘사한다. 덩달아 그는 그러한 행동이 원전 예술에 대한 명백한 “침해” 라는 뉘앙스로 역설한다. 그정도로 편곡이라는 행위는, 조금 주관적으로 변용하여 달리 말하면 "원래의 악보를 이탈"하는 행위는 그에게 더없이 끔찍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런 부분들에서 풍부한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리흐테르, 예술인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는 참으로 강한 개성의 “예술인” 그 자체였다. 오늘날의 어떤 이들은 때로 강력하고 억센 그의 모습을 두고 “Lion” 즉 사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의 손끝에서 표현되는 음악 또한 그러한 인간상을 똑닮아있다. 그는 20여년 전 세상을 떠나 이제는 만나볼 수 없지만, 이곳 저곳 음악으로서 확실하게 남아있는 그의 잔재는 우리에게 유산으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며 끊임없이 세대에 세대를 거쳐 사랑받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하다.


올해는 여태 사랑해왔던 연주자 중 한 명의 인생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쁜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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