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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환 Feb 22. 2022

오스모 벤스케의  <베토벤 교향곡 1번>

예술평론가 김승환


 전략적인 마에스트로, 오스모 벤스케

  지난 2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마에스트로 오스모 벤스케의 지휘 하에 서울시향의 공연이 치러졌다. 오스모 벤스케는 2019년에 정명훈을 이어 서울시향의 새로운 음악감독으로 위임된 핀란드 출신의 지휘자다.  

  가끔 누군가를 오래 보지 않아도 특정 제스처나 표정에서 나타나는 그의 성격을 알아낼 수 있을 때가 있다. 오스모 벤스케가 그러했는데, 그의 첫인상은 유머러스하고 쇼맨쉽 넘치는 재치있는 예술가였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을 쉬이 가볍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의 성격을 닮은 소신있고도 깊은 음악적 고찰을 거쳐간 흔적이 그와 서울시향의 연주에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오스모 벤스케, <베토벤 교향곡 1번>, 롯데콘서트홀.

   이번 공연은 음악감독인 오스모 벤스케 본인이 직접 편성했는데, 모차르트의 세레나데 12으로 시작하여 특이하게도 현대작곡가 알프레트 시닛케  하이든식의 모츠-아트  거쳐 베토벤의 교향곡  1으로 맺었다.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가들을 러시아 현대음악가가 이어주는 모습부터가 신선하기도 했거니와, 전혀 예기치 못한 현대음악의 등장에 적잖이 당황했다.

20, 21  번의 공연을 선보이기로 예정되어있던 서울시향은, 지난 20 공연 또한 비슷한 편성으로 연주를 올렸다. 버르토크[1]   모음곡과 시벨리우스[2] 교향곡 1 사이를 페테르 외트뵈시 라는 생소한 현대음악가의 말하는 드럼 이라는 작품으로 채워넣었다. 마에스트로가 의도한 바가 있었던걸까.


20일과 21일, 서울시향의 연주 편성. 현대음악이 사이에 껴있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세레나데 제 12번」   

<세레나데 12번>의 악기 편성

   무대를 열었던 모차르트의 세레나데는 관악 앙상블을 위한 곡이다. 13여개의 기악을 위한 세레나데 중 이번 공연에서는 12번을 선보였는데 마지막인 13번이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선율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이라는 사실을 의외로 많이들 모른다. 세레나데에서는 바로크 시대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관악 앙상블의 진가를 볼 수 있었다. 오보에, 클라리넷, 호른, 바순을 각각 두 대씩 배치한 관악 8중주의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교향곡을 연상케 하는 4악장 구성을 취한다는 특징이 있다. 당대의 귀족들은 관악 8중주 앙상블과 비르투오소 연주자에 막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에 상응하여 매우 발달한 형식과 수준의 실내악 작품이 서울시향의 기악가들을 통해 펼쳐졌다. 그들 관악 앙상블은 큰 오케스트라 전체의 일원으로서도 잘 어우러짐이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들 모두가 또한 악기에 대한 이해도와 노련함이 남다르다는 것이 다른 의미로 인상적이었다. 가볍고 깊음이 공존해야 하는 모차르트의 작품이었기에 더 그러했다. 오페라의 서곡을 듣는듯한 느낌마저 들게 하는 서정적인 선율이었다. 관악기가 고전적인 규율과 화성 안에서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진 소리의 향연은 단연 매력적이었고 어떤 공연이든 그 오프닝을 장식하기에는 더없이 완벽했을 것이다.

 

「하이든식의 모츠-아트」

<하이든식의 모츠-아트>의 악기 편성

   관악 앙상블의 세레나데가 끝난 후 조명이 꺼지고 무대 조정을 거친 후 현대작곡가 시닛케의 <하이든식의 모츠-아트> 가 이어 연주되었다. 현대작품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필자로서는 특히나 이례적이게도 이 작품에서 공연을 통틀어 가장 깊은 예술적 감명을 받았다.


  시닛케는 쇼스타코비치 이후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바이올리니스트 오이스트라흐 등의 아티스트들과 시대를 함께했던 작곡가로서 당시 사회주의 시절 소련체제의 억압을 받고 자연히 예술인으로서는 도태된 이력이 있어 여러모로 우리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이다. 그런 그가 작곡한 <하이든식의 모츠-아트> 는 원제가 <Moz-Art a la Haydn> 이다. 이는 모차르트의 이름을 분절하여 재조합한 재치있는 제목인데 실제로 작품에는 모차르트의 미완성 작품 <팬터마임을 위한 음악 k.446> 이 상당 부분 섞여 들어가 있다. 시닛케는 이런 식으로 과거의 여러 시대에 걸친 음악적 요소들을 현대적 작곡 기법과 융합하여 곡을 썼다. 그런 작곡 방식은 대중에게 아예 생소하지도, 아예 친숙하지도 않은 곡을 탄생시켰다. 일반적으로 불협화음의 난장이 일어나는 진행의 현대음악보다는 귀에 익은 멜로디를 활용하는 모습이 언뜻 보이다가도, 순간 순간 불협화음이 방해하듯이 계속적으로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다. 후반부에는 노골적으로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 40번 G단조」의 주제선율을 차용하기도 하며 재미있는 감상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비단 선율과 리듬만이 다가 아니다. 오히려 아름다움의 정수는 연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음악이 대개 그렇듯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시도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가령 지휘자를 포함한 연주자들의 실루엣만 간신히 보일 정도로 캄캄한 암전暗轉 상태에서 섬뜩한 바이올린 선율이 쌓이며 연주가 시작된다는 점이 있다. 그렇게 고조되어가는 분위기 속에서 연주자들이 동시에 과격한 트레몰로를 연주하는 시점에 많은 청중을 화들짝 놀래킬 정도로 갑작스럽게 모든 조명이 환하게 켜진다. 이후에는 마치 피카소의 콜라쥬(Collage) 기법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기성 음악의 파편들을 혼잡하게 연주하며 진행하다가 바이올린 연주자들 여섯 명이 불현듯 무대 중심으로 천천히 옹기종기 모여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움직임과 소리의 분포에 대한 영리한 활용이기도 하다. 나중에 연주자들이 연주를 진행하는 와중 모여들때의 느긋함과는 다르게 원위치로 뛰쳐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물론 구두와 무대 바닥이 만들어내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다.


  이 무대는 마지막까지 흥미로운 연출을 보여주는데, 다시 조명이 어두워진 이후 바이올린 솔리스트 두 명을 선두로 하여 연주자들이 마치 장례행렬을 연상시키는 두 줄로 한발자국씩 걸어가며 조용한 피치카토(Pizzicato: 현악기의 현을 손끝으로 퉁기는 주법) 를 양쪽 무대 바깥까지 가지고 나가 소리가 자체적으로 페이드아웃 되며 마무리된다. 이런 모호한 결말은 완전한 끝인지 확신하지 못하게 만들기에 끝까지 긴장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클래식 공연에서 박수는 정형화 되어있는 일종의 관례이자 에티켓이기도 하기에 관객들은 필연적으로 “지금 박수를 쳐도 괜찮을까” 라는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연주를 무대 위에서 끝맺지 않고 평소 연주자들의 연주 시작 전후 입장/퇴장 을 위한 (관객에게는 보이지 않는) 통로까지 소리를 이어나가는 형식 자체가 관객에게는 굉장히 파격적이었을 것이기에 단정짓기 어려웠을 것이다. 시닛케가 노린 것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음악일까.


「교향곡 1번」

<교향곡 제 1번>의 악기 편성

   그렇게 어느 한군데도 예측하지 못하는 음악으로 규율적인 고전주의 음악의 분위기를 한번 환기하고 인터미션 이후에는 연이어 다시 고전주의로 회귀했다. 베토벤의 심포니 첫번째인 1번이 연주되었다. 교향곡 1번은 <영웅> 이나 <운명> 처럼 거창한 부제를 달고있지는 않지만 첫째의 책임감을 제대로 알고 있는 듯한 작품이다. 후기에 작곡된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 와 같은 작품들에서 교향곡 1번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는 점만 봐도 베토벤 음악을 통틀어 중요한 비중을 가지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교향곡 1번은 특이한 조성을 가지는 1악장 Allegro con brio[3]  부터 Andante cantabile con molto[4] 로 이어지는 2악장, 일반적인 미뉴에트에 비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는 Allegro molto e vivace [5] 의 3악장과 웅장하고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4악장 피날레의 구성을 따라간다. 개인적으로 빠른 춤형식의 3악장 미뉴에트의 꽉 차있는 당김리듬과 음색을 가장 좋아하는데, 서울시향의 3악장은 여태 들었던 여러 오케스트라의 연주중 제일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충분히 다채로운 색상으로 표현해냈다고 생각한다. 물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이끈 빈 필하모닉의 베토벤 교향곡과 비교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카라얀이 지휘자로 역임하였던 가장 전성기의 빈 필하모닉과 비교하는 꼴일테니 말이다. 이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평가일 수밖에 없다.  (비슷한 수준에서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도 매우 훌륭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서울시향의 해석 또한 신선함과 명확한 그만의 색깔이 있었다는 것이다. 연주자 개개인의 기량 혹은 지휘자 개인의 역량의 편차는 있을 수 있겠으나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해석의 타당함색깔이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그들은 손색없는 연주를 보여주었다.


톤마이스터 최진과 소리에 대하여

  한편 연주의 질적인 부분에 대해 첨언하자면, 사실 지난 3월달에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박종해씨가 협연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 3번을 보러 갔었는데  연주 사이의 시간 간격이 밭아서 그런지 악단 역량의 중요성과 명백히 드러나는 차이점을 생각하지 않을  없었다. 이번 연주는 무대 위와 앨범에서의 소리를 전문적인 엔지니어링 방식으로 잡아주는 전속 톤마이스터(음향 장인)  함께하여 악기 간의 전반적인 음향 밸런스가  맞았다.


톤마이스터 최진   ⓒ 서울경제

  서울시향의 무대 소리를 잡아주는 톤마이스터 최진은 베를린에서 톤마이스터 과정을 밟고 활동하는 우리나라에 몇 없는 톤마이스터다. 백건우, 조수미, 정경화 등 여러 국내 정상급 아티스트들과 협업해왔고 해외 클래식 레이블 DG와 함께 일하며 경력을 쌓아왔기에 누구보다 소리에 대해서는 탁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실력을 토대로 이번의 완벽한 무대를 만들고자 치열한 준비를 한 듯 보인다. 이와 더불어 시향 단원 모두가 소리로 일심동체하여 끝까지 프로답게 이끌어나가는 흐뭇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원들간의 오랜 호흡을 통해 쌓아온 합이 완전무결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참으로 칼같이 담백했던 연주라고 호평일색하고 싶다.


최진이 작업한 국내외의 앨범들. 백건우의 브람스 앨범과 조수미의 모차르트 앨범도 눈에 띈다.

  이제 결론이다. 먼저 시립교향악단이 연출을 포함한 현대작품을 시연한다는것이 꽤나 도전적인 시도로 느껴졌다. 청중의 수요와 공감에 대한 아주 섬세한 이해 없이는 성공적인 공연이 성립하기조차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들으러 온 관객들에게 이름조차 생소한 러시아 현대작곡가의 작품을 내어놓는 대담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결과적으로 오스모 벤스케의 지휘자로서의 예술성과 관객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깊은지에 대한 명확한 반증이 되었던 것 같다. 그가 기성 기법과 현대기법을 융합하여 만든 특징적 현대작품을 꺼내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서 그는 관객들로 하여금 현대음악에 대한 거부감을 걷어내고 새로운 시각으로 즐겁게 감상할 수 있게 주도적으로 이끌어낸 것이다.


  한편 이토록 얘기할 거리가 쏟아지는 양질의 내용성을 가진 공연을  80분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여실히 담아냈다는 점과 순서의 측면에서 현대음악 작품을 시작도 끝도 아닌 두 고전작품 중간에 넣었다는 점 또한 그가 취임한 이후 2021년까지도 예술인들의 입에 쉴새없이 오르내릴 만한 역량이 넘치고도 흐른다는 것을 증명해내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여러 미디어에서 접하며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연주자들, 지휘자들과 숱하게 협연했던 서울시향이었기에 그들의 동향을 꾸준히 살피고 있던 참에 좋은 기회로 공연에 참석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짧은 공연 시간였음에도 단 세 개의 작품으로 감정적인 압도를 당했던 경험이었다.

짧지만 힘차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며 그 모든 것을 묶어주는 핵심이 있었던 해당 공연을 보고 나와서 함께 간 동행과 필자 모두 꽤나 오랫동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던 것을 가만하면 함께했던 대부분의 관객들 또한 적잖이 만족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2021.04.21 (수) 롯데콘서트홀

예술비평가 김승환




[1]

 헝가리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음악학자.

[2]

 핀란드 최대의 작곡가이자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세계적인 작곡가. 국민악파의 영향을 받았으며 북유럽풍의 음악을 썼다.

[3]

 빠르고 힘차게.

[4]

 느리고 노래하듯이 생생하게.

[5]

 매우, 아주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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