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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일파워 임승희 Jun 21. 2020

엄마의 옷장

네 번째 이야기. 딸에게 입혀주고 싶은 하얀색 블라우스

내 인생에 친구 같은 딸이 하나 있을 거라고 어린 시절 사주카페에서 들은 건 있어가지고, 나는 임심 했을 때 딸이라고 단정 지었다. 추어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쁜 딸을 낳고 싶었다.

임신을 하면 입덧이나 우울증이 온다는데 나는 나의 배 속에 아기가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매일 클래식을 들으며, 명화 감상을 하였다. 빨간색 조끼를 뜨기 위해 뜨개질도 배웠다. 

모델학과에서 강의를 하며 모델 강승연이 어떤 아기 낳고 싶냐고 해서 나는 너처럼 팔다리 긴 아기가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아기야 아기야 언니처럼 팔다리 길게 태어나라"

나의 태교는 완벽하였다고 자부한다.

드디어 딸이 태어났다.

"3.8kg을 자연분만으로 낳으시면 어떡해요?"

나는 36세 노산 임산부였다. 분명히 의사 선생님이 아기가 3.3kg 작으니깐 자연 분만하자고 하였는데 낳고 보니 3.8kg 우량아가 나온 것이다. 아니 우량아가 아니라 진짜 모델 강승연처럼 팔다리만 긴 얼굴이 아주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 신생아실의 아기침대에 우리 딸의 발이 자꾸 삐져나와있기 일수였다.

출처: 네이버

나는 우리 집의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첫째가 딸이면 살림밑천이라고 하였던가? 언니는 환영을 받으며 첫째로 태어났다. 둘째는 아들을 낳고 싶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둘째로 내가 드디어 세상에 태어났다. 집안에서 산파에 의해 태어난 나는 환영을 받지 못했다. 아빠는 소주를 마셨다 하고 엄마는 눈치가 보여서 아기를 안아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또 딸을 낳았다며 태어난 아기를 이불에 싸서 구석에 방치했다고 한다. 

나의 첫 세상 구경은 참 구질구질했다.


나에게 딸이 태어났다는 것은 이 세상에 내편이 생긴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가 행복했고 나의 딸은 동화 속에 요정처럼 늘 스타일이 빛났다.  아이는 순하고 밤에도 잘 자고 낮에는 잘 놀았다. 정말 엄마를 위해 태어난 아이 같았다. 

놀이터가 나갔다. 딸아이는 친구랑 놀고 싶은데 말을 거는데 서툴렀다. 은근슬적 놀잇감을 가지고 그 아이 옆에 앉아있다가 말을 걸어오면 원래 같이 놀았던 것처럼 끼어서 놀고는 하였다. 

"친구야 놀자~~ 먼저 해봐"

아이는 수줍음이 많았고 먼저 말을 못 거는 아이였다. 

엄마가 말을 걸어서 친구랑 연결을 해줘야 그제서야 웃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엄마가 맨투맨 티셔츠 하나를 사 왔다.

내 거라고 입어보라고 하셨다. 옷이 많이 커서 소매가 이미 손가락까지 다 덮었다.

"안 되겠다. 이거 언니 주고 내일 다시 사줄게"

나는 약속을 믿었다. 엄마가 진짜 또 맨투맨 티셔츠를 하나 더 사 오셨다. 당연히 내 옷이라고 주셔서 입어봤는데 이번에는 작았다. 소매가 손목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이건 작아서 남동생을 줘야겠다고 하셨다.

나는 깨물어 아픈 손가락이라고 생각했다. 내 옷은 항상 존재하지 않았다. 언니가 입고 작은 옷이 내 옷이었다. 

그날 나는 지풍이 날아가라고 큰소리로 꺼억꺼억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엄마는 똑같은 옷 두 벌을 사서 언니와 나를 주었다. 


나의 딸아이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로 성장하였다. 혼자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것에 집중을 하였다.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엄마들을 만나 모임도 해보고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기와 맞는 친구 한두 명이 고작이었다. 속이 많이 상해서 딸에게 물었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않니?"

"혼자 있으니깐 조용히 그림도 그리고 좋잖아 나는 심심하지 않아"

딸은 요즘 아이로 그렇게 성장하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발표력도 떨어지고 목소리도 작다. 그러나 딸아이는 그림과 글쓰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다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딸이 내가 재직하는 학교에 온 적이 있었다. 수줍은 아이는 인사만 살짝 하고 연구실로 들어가 버렸다. 학교에 교수가 딸을 보며 나에게 물었다.

"어떤 딸로 키우실 거예요? 엄마 닮았으면 아주 특별할 것 같은데"

"저는 아주 평범한 딸로 키우고 싶어요.  대학 나와서 시집가서 아기 낳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나의 대답에 듣고 있던 교수는 좀 당황했다. 나처럼 특별히 키울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더군다나 두상이 작고 팔다리가 긴 모델 간지의 딸을 보고 더 놀라워했다.


엄마는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바쁘셨고 애도 셋이나 돼서 챙길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리고 실행을 해서 획득해야만 하는 삶을 살았다. 힘들었지만 나는 스스로 다 해냈다. 

나는 어려서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싶었다. 그러나 사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사달라고 해봤자 거절당할게 뻔하기 때문에 상처 받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 딸에게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히고 싶다. 나도 딸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딸아이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다. 딸아이에게 거절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소곤거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딸아 엄마가 살아보니깐 삶은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아. 

엄마가 오늘도 딸을 위해서 하얀 블라우스를 한 땀 한 땀 조심스럽게 만들고 있어.

나이가 들어갈 수록 딸이 커갈 수록 나는 엄마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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