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타일파워 임승희 Jul 01. 2020

엄마의 옷장

다섯 번째 이야기. 앞이 막막할 때가 있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마음이 철렁한다.

작은 일에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걱정부터 앞선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걱정이 늘어나는 것과도 비례하는 것 같다.

유아인의 좀비 영화 #살아있다가 개봉하였다. 코로나 19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물론 유아인 티켓파워이겠지만, 일상이 없는 현실에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선택으로 영화를 봤다.

유아인은 빛났다. 내 눈에 익숙한 프랑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컬러베레이션의 미장센!! 세련된 영상이었다.

스토리의 구조는 어디서 본듯하고 좀비는 싸구려 퍼레이드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우리와의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코로나 19로 우리는 고립되었다. 좀비가 아니라 일상을 잃어버린 경제적 좀비들에게 고립 강금되어버렸다. 그렇게 시간은 단조롭던 일상을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혼자가 되어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안에서 살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엄마의 옷장을 열어본다.

잔잔한 꽃무늬가 들어간 겨자색 원피스를 꺼내본다. 나는 엄마의 옷을 입는다.

엄마는 늘 씩씩했다. 남편이 남기고 간 어린 철부지 삼 남매를 보면서도 연신 방긋방긋 웃으셨다.

늘 바쁘게 일하고, 집안을 반질반질하게 온 힘을 다해서 청소하는 모습이 엄마의 모습이었다. 나의 사소한 일상에 대한 대화는 많지 않았다. 엄마는 늘 바빴다.

엄마는 삶에 대해서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잠을 자다가 희미한 소리에 잠을 깼다. 그때가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때인 거 같다. 자세히 들어보니 희미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엄마에게 내가 깨어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녀의 그 시간을 지켜주고 싶었다. 엄마도 빡빡한 삶이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10년 전 스타일리스트로 같이 일했던 A에게서 전화가 왔다.  A는 재주가 많은 친구였다. A급 연기자는 아니지만 조연급 여자 연기자를 여려 명하였고, 메이크업도 같이 진행하며 현장에서 나와 담소를 나누던 친구였다. 10년 전 어느 날 그녀와 오랫동안 일하던 여자 연기자가 소속사를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스타일리스트가 교체가 되었다. 그 이후로 A양을 볼 수 없었다. 그러다 5년 전인가 갑자기 전화가 왔다. 자기가 스타일리스트를 접고 네일숍을 오픈하였다고 하였다. 그녀는 매우 현실적이고 생활력이 강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제 A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일숍은 그녀에게 돈을 내고도 찬사를 보내는 일반 고객들이 행복을 주었다고 하였다. 무조건 맞추고 스텐 바이하고 그러고도 문제가 생기면 다 책임져야 하는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는 자신을 한 없이 작게 만들었던 순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암이 생겼고, 일상을 접듯 네 이샵을 접고 항암에 전념하였으며,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였다. 지금은 필리핀에서 삼겹살을 파는 한국식당을 엄마랑 같이 운영 중인데 코로나 19로 한국에 나왔으며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현재는 입국 금지라 일상이 정지하였다고 하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밝았다. 우리 엄마의 목소리를 닮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 그녀를 떠난 여자연기자와  연락을 계속 주고받는 사이였고, 그녀 또한 자연스럽게 일이 줄고 결혼을 하게 되어서 연예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간간히 광고제의 연락이 왔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하여 그래도 현직인 나에게 매니지먼트를 알아봐 달라고 연락이 왔다.


코로나 19는 모든 일상을 정지시켰다. 계획은 모두 무산되었으며 앞으로 전진도 희박한 상황이다.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만 고립된 줄 알았었다. 앞이 막막할 때가 찾아왔다. 무언가의 희망을 끈을 잡아야 한다.

#살아있다는 우리의 현재와 너무도 닮아있다. 일상의 넉넉함이 살아지고 식량도 사라지고 정신도 사라진다. 혼자 미칠 것 같은 절규와 결국엔 탈출을 시도한다. 밖은 위험하다. 그렇다고 안은 굶어 죽을 상황이다.

목소리가 밝은 A양 일상의 정지상태에서도 희망을 끈을 놓지 않는다. 곧 필리핀으로 들어가서 다시 일상을 돌려놔야 한다고 하였다. 다시 시작하려는 연예인도 일상에서의 탈출을 시도한다. 결과가 결코 낙관적이지는 않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한다.



엄마의 옷장 안에 겨자색 원피스는 내게는 아직 크다. 아직은 내가 입기에는 너무 옷이 크다.

앞이 막막할 때가 있다. 울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답답할 때가 있다. 나만 고립된 것 같으나 앞의 아파트에도 나처럼 고립되어 혼자가 된 사람들이 삶에 대한 강한 애정을 가지고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옷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