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는 말이 딱!!
오늘은 2호가 일찍 끝나는 날이다. 6학년인데 1시 반에 수업이 끝난다. 그런데 특별히 가는 학원이 없어서 2시부터 올데이 프리 하시다. 올데이 자유!!
그런데 그 자유도 어쩌면 형벌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 게 우리 2호를 보면서 느꼈다.
“엄마 나 뭐 하지?”
“엄마 나 뭐 할까?”
2시까지 동네 도서관으로 와서는 영어문제집 풀고 나에게 빚이 있는 2호는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 준다고 은행으로 갔다. 은행으로 가는 길에 형아 준비물 사러 문방구까지 들렸더니 은행에 걸어가니 기진맥진해졌다. 사실 꽤 거리가 되는 동선이었다. 그런데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고 돈을 찾은 적이 없어 내가 비밀번호를 잊었다. ㅎㅎ
절망에 빠진 2호!! 미안하다. 엄마가 그 준비를 못 했네!! 내일 나 혼자 와서 돈을 인출하겠다고 했더니 100만 원 찾지 말란다. 빚은 80만 원이었다.
이 빚에 얽힌 이야기는 짠하다.
게이밍 컴퓨터가 너무 갖고 싶은 2호는 매일매일 혼자 컴퓨터 사양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미 마우스와 키보드로 호갱이 되었다고 느낀 2호는 혼자 컴퓨터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원하는 사양을 가진 컴퓨터의 가성비 갓템을 찾아 놓았던 거다. (마우스와 키보드는 그림만 보고 고른 것이었고 그는 자기 기준으로 비싸게 생각했던 금액에 비해 사용감이 좋지 않았던 키보드와 마우를 사용하며 무척 분해했었다.) 그리고 계속 컴퓨터 타령을 시작했다. 너무나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드디어 내가 넘어갔다. 그리고 제안을 했다.
너의 절실함을 보여줘. 방법은 인스타에 매일 그림을 그려 올려 일일 1 포스팅을 100일간 해보자. (우리 집 2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잘한다.) 그럼 엄마가 네가 원하는 그 컴퓨터를 사줄게
내가 아들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하루에 한 번씩 그림을 그려서 올리기 시작했다. 집념과 성실함에 나도 놀랬다. 자기의 감정과 원하는 컴퓨터를 그리기 시작했고 약 50일이 되어 갈 때 2호는 나에게 제안을 해왔다.
엄마 50일 그렸으니 내가 컴퓨터 값의 반을 낼 테니 엄마가 나머지만 내줘요.
이 제안에 내가 그만 훅 넘어갔다. 일단 예산이 반으로 줄었고 그동안 내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던 아이와 이제 그만해라 엄마 써야 한다. 엄마 언제까지 써요. 나도 게임하고 싶어요의 실랑이가 끝나게 될 것 같으니 내가 흔쾌히 수락을 해버렸다. 결국 우리 집 2호는 컴퓨터를 사게 되었고 나에게 80만 원의 빚을 지게 되었다.
이렇게 약 50일간 아들과 약속의 중요성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갖는 어마무시한 위력을 알려주며 나는 그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게이밍 컴퓨터를 사주었다.
사실 80만 원을 받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게이밍 컴퓨터를 자신의 노력과 자신의 돈으로 샀다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서 오래오래 아끼며 잘 쓸 수 있도록 해주고자 받아야겠다 결심했다. 돈은 앉아서 죽고 서서 받는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 말이다. 내가 언제 줄 거냐고 졸졸 쫓아다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