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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꿈나무 기린이 (?)

오늘 나를 채운 글 (3)

by 반드시

기도란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알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읽은 책은 나에게 기도에 또 다른 면을 보여 주었다. 모든 (예외 없이) 상황이든 사물이면 한 면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디를 보느냐 어떻게 보느냐 어떤 가치를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해석된다.

신앙이 깊지 않은 나는 기도를 그저 청하는 것으로 푸념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물론 대화의 여러 방식 중에 그저 청하고 푸념만 하는 대화가 있듯이 이것도 기도가 아닐 수 없지만 상대가 듣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좌절하고 다시는 이 사람에게 요구하거나 푸념을 쏟아놓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기도도 하느님이 내 말을 듣고 계신 건지 의문이 들면 기도의 횟수를 줄이다가 결국 하지 않는다.

그렇게 기도와 멀어지고 있는 내가 오늘 새벽에 읽은 글은 기도를 하는 나를 한 단계 성숙하게 했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오죽하면 "*린이"라는 표현이 있을까? 기도 꿈나무는 "기린이" 인가? 기도가 아프고 힘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된 책 속의 밑줄은 다시 책갈피로 기록해 본다.


기도는 당신이 창조하신 자녀를 속속들이 알고 계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제안에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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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느님을 믿고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도이기에,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때론 험난하고 아프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기도가 내가 원하는 것을 청하는 것보다는 우리에게 무슨 제안을 하시는지 마을을 열고 귀를 기울여 그분이 준비하신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라면 이는 자기 계발서에서 누누이 말하는 네 직관을 따라 움직이라는 말과 그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심어주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우리만 가지고 있는 색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신앙을 떠나서 표현하면 나안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결국 인생은 타인이 아닌 나로부터 비롯한 나를 찾아는 여정임은 확실한 것 같다.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결국 기도인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이것저것 요구하고 청하고 따지고 푸념하고 하는 과정은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지난한 과정일 것이다. 타인에게 저렇게 늘어놓는 대화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러니 늘 시간을 비우고 신앙인이면 하느님과 함께 아니면 스스로 혼자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깊게 고민하고 성찰하는 시간은 인생을 좀 더 의미 있는 방향으로 이끄는 길임은 확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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