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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오후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일

by 반드시

하교할 시간이 되자 부슬비가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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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가는 둘째 아이에게 우산을 쥐여주고 보냈다.

그런데,
문득 걸려온 전화 한 통. 테니스 학원에 간 큰 아이다.
"엄마, 나 우산 없는데 여기 비가 와요."

"그래 수업 끝나고도 비오면 3정거장 전 쯤에 다시 전화해"

"네"

카톡이 울렸고 아직 밖에는 비가 내려서

나는 우산을 두 개 챙겨 나섰다.

정류장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비는 조용히 세상을 적시고 있었다.

이제 막 고개를 든 벚꽃이 신경이 쓰였다. 이번 주말까지만 버텨보자.

꽃을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은 짧다. 그래서 시일을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벚나무를 보며 잠시 꽃놀이를 상상하니 어느새,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리고,
내 키보다 훌쩍 커버린 아들이 나왔다.

우산을 쓱 내밀었다.
아이는 놀래더니 이내 씩 웃었다.

난 가져간 다른 우산을 외투 주머니에 쑥 눌러 넣었다.


"같이 쓰자."

우리는 한 우산 아래로 머리를 맞대고
천천히 집으로 걸었다. 우리는 벚꽃이 너무 빨리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와

테니스 코치님은 어떠시냐고 물었고

다음에 엄마도 같이 가야겠다는 소소한

대화를 하며 집으로 향했다.

빗소리 사이로, 전해지는 아들 느낌은 감사하다.


예전엔,
회사에 붙들려
이런 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지금은,
아이를 기다릴 수 있고,
아이와 함께 걸을 수 있다.


어제 내린 봄비가 감사하고

우산을 챙겨 줄 여유가 감사하고 우리를 비추는 것 같았던

벚꽃이 감사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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