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글쓰기를 시작하고 밤과 낮 없이 글을 쓸 때마다 아팠어. 심장을 후벼 파는 슬픔이 글을 쓰는 내내 뼛속까지 녹아내려서 드디어 작심삼일이 되는 날 마음으로부터 이번 프로젝트를 포기하자고 했어.
이럴 땐 누구라도 나를 구해주기를 바라잖아. 내가 듣고 싶은 말 말고, 내게 필요한 말을 해줄 사람, 그래 그런 사람 내게도 있더라. 내가 전화를 걸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어폰을 찾았어. 그리고 물었지. “괜찮니?” 여고생 농담 같은 이야기만 까르르 웃어넘기며 나누던 우리야. 그런데 대뜸 “괜찮니?” 하는 말에 놀라 “아니 안 괜찮아” 말해버렸어. 그리고 그녀가 말해,
한영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네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해.
너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말아야 해.
네 자유로운 영혼이 쉴 수 있게
쉴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해.
그래 생각났어.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어. 그 단순한 사실을 기억하고 나니 어둑하고 축축했던 장판에 파르르 봄나물이 피어나. 피우 피우 작은 새들이 어깨에 앉아 노래해. 그리고 기억났어. 이렇게 환희에 차 흘리는 눈물은 짠맛이 없다는 걸. 눈꼬리부터 흘러 입술에 고이지 않으니까.
글을 쓸 때 내가 아픈 이유는 아프기 때문이었어. 그 아픈 것을 이제야 꺼내기 시작했을 뿐 잘못된 것은 없어. 내가 선택한 나의 심연을 치유하는 과정 속에서 ‘아픔’도 나의 선택의 일부라면 기꺼이 아파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또 이렇게 말해.
"네가 진짜 바라는 것은 뭐야?”
이 질문을 공책에 적어 놓고선 갑자기 무척 곤란해졌어. 이런 종류의 질문을 만날 때마다 나는 말문이 막혀. 왜냐하면 내가 진짜 바라는 게 뭔지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은 나와는 늘 거리가 먼 이야기였어. 짝꿍이 나를 때려서 코피가 터졌을 때도, 소나기가 무섭게 쏟아지던 날에도 내가 바라는 것은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으니까. 엄마는 단 한 번도 내게 사과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미룰 수가 없어. 왜냐하면, 이제 엄마도 나와 같이 이 세상에 대해 배워가고 있는 작고 예쁜 소녀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 핑계가 사라진 담대한 들판에 서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한 사람뿐이니까. 그래서 이제는 내가 그 질문에 답을 할 차례야.
"네가 진짜 바라는 것은 무엇이니?"
언젠가 ‘욘스 마인드’의 질문지에는 이런 식의 대답을 했어. ”나는 청담동 에테르노의 펜트하우스에서 람보르기니 우르스를 타고 출근한다.“ 하지만 사실 그때 나는 우르스가 필요하지 않았어. 내가 진짜로 바라는 건, 단지 ‘자유‘였어. 내가 글을 쓰고 싶을 때 시간의 구애받지 않고 쓸 수 있는 자유, 내가 원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자유, 내가 원하는 순간에 가고 싶은 곳에 가는 자유,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자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을 자유, 무례한 것에 언제라도 무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 내가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을 자유.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나는 지금보다 견고해져야 할 뿐이었어."
그래, 네 속엔 언제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었어. 정말 놀랍지? 그리고 그 잠재력을 보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럴수록 규정속도를 지켜야 해. 지금 너 스스로의 모습이 어떤지 상상해봐.
“지금 내 모습.. 지금 내 모습은 추수의 계절에 먹이를 잔뜩 물고 먹이를 찾아다니는 욕심 많은 다람쥐 같아.. 이 황금 같은 순간에 경계를 놓쳐버리면 기회의 신이 발에 달린 날개를 펼치고 도망칠 것만 같아 두려웠어. 그래서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무리해서라도 이 시간을 지켜내고 싶었어. 그래서 실패로 가득한 과거의 나와 반대의 선택만 했어.”
그 말이 100% 확실하니? 과연 네가 실패만 했을까? 네가 생각하는 그 실패로 네가 얻은 것은 없을까? 그렇게 질문해보니 우습게도 나는 한순간도 실패하지 않았더라. 나는 느리지만 신중하고, 지구력이 부족하지만 순발력이 있고, 우울하지만 슬픔을 안을 줄 알고, 가난하지만 가난 속에 핀 꽃도 꽃이라는 걸 아니까. 남들의 속도에서 보면 내가 길 한가운데 멈춰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 하지만 나는 나만의 템포로 춤을 추고 있었던 거야.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아름다운 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