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생 김창덕씨는 논현동 논골집 점장이었고, 대구 팔공산 편의점 주인이었으며 2년째 복막암으로 투병 중인 암환자이다. 의사는 창덕씨의 복부를 열었다가 복막 전체에 튄 암세포를 보고 바로 수술을 중단했다고 했다.
처음에 그를 봤을 때 그는 병원의 슈퍼스타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주변에 빙 둘러앉아 하이텐션의 이야기를 나누고 옥수수며 수박 같은 맛있는 간식이 있을 때마다 창덕아~ 하고 불렀다. 그러면 그는 스낵백을 비스듬하게 쓰고 조금 귀찮다는 듯이 앉아 사람들이 깎아주는 과일을 받아먹었다. 그는 마치 세상에 하나뿐인 병원 적성의 사람 같았다.
그를 다시 본 건 2년 뒤 내가 합병증 수술 후 건강악화로 장기 입원을 했을 때였다. 두 번째 수술이라 그런지 몸도 마음도 부쩍 야위어가고 뭘 먹어도 맛있지 않았다. 그때 나 보다 비쩍 마른 한 남자가 병실로 찾아와 복숭아 한 알을 건네줬다. 김창덕 씨였다. 지난 2년 동안 너무 많이 변해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20kg 정도 몸무게가 줄어든 이유가 술과 담배 때문이라고 했는데 암환자가 왜 술과 담배를 하느냐고 물어보니 항암을 하고 와서 울렁이는 속에 음식을 넘기려면 어쩔 수 없이 소주를 마셔야 한다고 했다.
그런 김창덕 씨의 꿈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얼마나 돈을 벌고 싶은지 돈 벌 궁리에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든다고 했다. 그래서 돈 만 원만 생기면 토토를 사러 간다. 한 번은 시내에 토토를 사러 가다가 뒤에 오던 페라리를 발견하고 부러 길을 양보해 페라리 뒤를 경호차량처럼 쫓아가며 “차 좋네”라는 말을 연발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토토가 되면 바로 계약하러 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정작 돈과는 거리가 멀었다. 암 진단을 받기 한 달 전에 보험 6개를 해약하는 바람에 10원 한 푼 받지 못했고, 무어든 큰 거 한탕만 바라는 통에 주변에 사기꾼들이 진을 쳐, 한 사람에게 무려 4 연속 콤보로 사기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렇게 병원에서 가장 가난한 창덕 씨는 치질 수술을 한 경선 언니에게 치질 방석을 사다 주기도 하고, 가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김간호사 언니에게 “오늘도 혼났나? 일 있으면 내한테 다 말해라”하며 오빠 같은 소리를 하기도 한다. 한 번은 3년째 항암 중인 정화언니를 따라 한 시간 거리의 아산병원에 간 적이 있는데 간호사는 결혼도 하지 않은 정화언니에게 “아드님이 오셔서 든든하시겠어요”라고 말했다. 대체 창덕씨는 누구일까? 오빠일까. 아들일까. 환자일까. 보호자일까. 아마도 창덕씨가 병원에서 슈퍼스타인 이유는 내일 바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백 년을 볼 것처럼 사람을 대했기 때문이리라.
의사는 창덕씨에게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 같다며 마약성 진통제 6개월치를 미리 처방해주었다. 그는 “내는 그래 생각 안 하는데?”라고 말하며 토토나 사러 가자고 했다. 나는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으며 “토토 맞으면 베트남 쌀국수 사주나?”하고 말했다. 살이 빠져도 여전히 스냅백이 잘 어울리는 그에게 왠지 죽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의 삶에 한탕이라는 반전이 기어이 오고야 만다면, 토토 말고 그의 복막에서 벌어지기를 기도한다’고 중얼거린다.
#백일백장 #책과강연 #러브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