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첫 의자는 엄마의 미싱 의자였던가. 한때 나는 엄마의 얼굴보다 그 의자에 앉은 엄마의 굽은 등을 더 많이 보았다.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외출한 동대문 수도 시장의 기억 속에도 엄마의 얼굴은 없다. 엄마는 원단과 단추 따위를 고르며 엘리스의 토끼처럼 바쁘게 걸었고 작은 나는 인파에 묻힌 엄마를 놓치지 않으려고 목을 숭덩 잡아 빼고 걸으며 엄마의 그림자를 쫓았다. 엄마는 항상 바빴기 때문에 학교에서 윤성이가 나를 때린 날에도 오지 않았다. 그날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이었기 때문에 그다음 날 바로 윤성이 코에 실내화를 던져 코피를 터트렸다. 그렇게 의자와 사랑에 빠진 엄마는 내가 수술하는 날에도 내 얼굴만 보고 일을 하러 갔다. 남편이 없는 엄마에게 미싱 의자는 남편이었고 새끼들을 먹여 살릴 유일한 생명 줄이었기 때문에 이제 의자가 아닌 누구도 사랑하는 방법은 모른다. 그중에 가장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당신 자신이었으리라.
그런 엄마가 올여름 거상 수술을 받았다. 지인의 지인의 지인 할인으로 강남의 1/3 가격에 수술을 했는데 수술 중에 터진 혈관을 잡지 못해 비상이 걸렸다. 나는 간호사의 호출로 황급히 수술실에 들어가 송장처럼 늙고 차가워진 엄마의 발을 주물렀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엄마가 죽을까 봐 두려웠고, 이렇게 위험한 상황을 만든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고 싶었다. 이 병원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수술을 말렸다면? 애초에 왜 이런 수술을 하려고 한 거지? 질문의 꼬리는 다음 꼬리를 물고 과거로 조금 더 과거로 들어갔고,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니 화장대 앞에 앉아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는 엄마의 예쁜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엄마도 여자였지. 그래 엄마도 얼굴이 있었지. 내일 죽어도 오늘 아름답고 싶은 것이 여자 아니었던가. 많은 엄마들이 그러하듯 내 엄마도 평생 당신 자신을 위한 사치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엄마가 칠순이 넘어 처음으로 돈을 모아 당신을 위한 선물을 한 것이다. 순간 유난히 하얀 엄마의 얼굴에 튄 붉은 피에서 설원의 매화꽃 향기가 났다.
고마워 엄마.
우리를 버리지 않고 키워줘서.
사랑해, 엄마.
아직은 할 수 있는 효도가 이 말 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