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조조를 만났을 때, 그녀는 담임 옆에 서서 마치 앞으로 가르칠 학생들을 살펴보는 선생님처럼 천천히 우리를 둘러보았다. 지방에서 전학 온 조조는 당시 잘 나가는 애들만 입던 게스 셔츠에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 브랜드가 프랑스에서 입는 파티용 드레스인 줄 알았다.
남대문 새벽시장에 나가면 김밥 대야를 머리에 인 행상이 “메이커 김밥~”을 외치며 팔던 시절이었다. 메이커가 김밥보다 유명했던 시절이었지만 그제야 메이커 청바지의 실물을 처음 본 것이다.
그녀는 마치 하이틴 드라마에 나오는 시니컬 한 여주인공 같았다. 솜털이 보일듯한 하얀 피부에 당시 남자애들이나 하던 보이시한 리프 컷을 하고 있었는데, 우유처럼 하얀 목덜미로 내려오는 커트 질감이 나뭇잎처럼 부드러워서 그 가느다란 목선 가까이로 가 하얀 우유 냄새를 맡고 싶었다. 그리고 레몬빛 햇살이 내려앉은 그녀의 머리카락 위에선 빛과 소금의 시티팝, ‘샴푸의 요정’이 흘렀다.
그 무렵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서, 타인이 들어 올 자리가 없었다. 행여 나를 들추고 상처 낼까 두려워 빗장을 잠그고 주야로 보초를 섰는데, 어떻게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사람에게는 또 금세 동화되고는 했다. 사실, 속마음은 사랑이 그리웠던 것이리라. 그렇게 사랑에 목마른 자의 사랑은 헤프고 헤프고 헤퍼서 낮이고 밤이고 그 사람을 자식처럼 핥고 비비며 살뜰히 사랑하고 그렇게 내 속에 내가 하나씩 더 늘어 가기도 했던 것이다.
조조를 처음 본 순간도 그랬다. 나는 그녀가 강력한 속도로 나를 비집고 들어왔음을 직감했다.
조조는 수업 시간 내내 잠을 자고, 쉬는 시간이 되면 담배를 피우러 갔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냄새를 맡으면 알 수 있다. 엄마에게 나는 냄새였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갔던 엄마가 나올 때면 늘 비에 젖은 장작불 냄새가 났다. 그것은 아빠의 담배 냄새와는 다른 조금 수치스럽고 음침한 냄새였다.
엄마도 그걸 의식했는지 화장실에서 나오면 검은색 악어가죽 핸드백의 금장 버클을 돌려 아카시아 껌을 꺼냈다. 그리고 고해성사 대신 다방 아가씨들처럼 딱딱 소리를 내며 껌을 씹었다. 나는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엄마에게도 혼자만 알고 싶은 비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이 끝나면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처럼 천천히 담배냄새가 퍼지고 조조가 내 앞 의자에 앉았다. 그러면 나는 책상 위에 입김을 불어 ‘조조 안녕?’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조조가 움직일 때마다 흩어지는 담배냄새를 그러모으려고 그녀의 머리칼 가까이 다가가 횡격막을 부풀려 호흡을 들이마셨다. 그럴 때마다, 내 심장은 유원지의 풍선처럼 거대하게 부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