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조조를 만났을 때, 그녀는 서귀포에 있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뜨거운 남국의 태양볕에 자동차 보닛이 녹아내릴 것 같은 날씨였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서 <카페>가 적힌 입간판을 보자마자 5시 방향 골목으로 급하게 차를 꺾었다. 그리고 영화 속 장면처럼 미처 보지 못한 구조물에 자동차 바닥 언더커버가 부서졌다.
렌터카 회사에 전화해보니 전일정 사고에 대해 1회성 보장이라고 안내한다. 여행은 이제 막 시작했는데 막막했다. 나머지 일정 동안 보험 없이 여행하기가 불안했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다. 나는 자동차 바닥의 언더커버가 찢어진 정도면 간단한 수리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직접 정비소로 찾아갔고, 거기에 조조가 있었다.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의 얼굴은 중학교 때 모습 그대로 키만 훌쩍 자란 것 같았다. 피부는 조금 그을었지만 여전히 보이시한 리프 컷의 질감이 기다란 목선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렸고, 가늘게 뜬 웃음 안에 눈물처럼 반짝이는 눈빛이 어릴 때 모습과 똑같았다.
점프슈트 속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몸매는 투박한 옷에 가려져 있기엔 왠지 서글프게 보이기도 했다. 그녀도 나를 알아봤을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곳까지 왔을까.
오일에 찌든 금속 냄새가 가득 찬 정비소에서 리프트를 내리던 조조는 한동안 나를 빤히 보고는 목에 두른 수건으로 무심하게 땀을 닦으며 희미하게 웃어주었다. 특별히 애쓰지 않는 담담한 미소, 내가 좋아하던 조조의 미소다. 자몽 빛 석양이 드리운 그녀의 얼굴이 붉은 루비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그녀는 마치 기다리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작업을 바로 멈췄다. 그리고 입고 있던 점프슈트를 반쯤 내려 허리에 묶고 주방세제를 펌핑한 수세미로 엔진오일에 얼룩진 손을 닦았다. 회전 선풍기에서 부는 미지근한 바람에 흔들리는 머릿결이 나비의 날개처럼 파르르 떨렸다.
나는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 미리 숙소 예약을 해두었지만 선뜻 자기 집으로 가자고 말하는 조조를 따라 고민 없이 그녀의 차에 올라탔다.
그녀의 낡은 픽업트럭은 자유로운 그녀보다 더 자유로웠다. 먼지 쌓인 대시보드, 그 위에 놓인 색이 바랜 티슈 상자와 반쯤 뜯어진 좌석의 직물 커버, 조수석 바닥에 떨어진 맥도날드 햄버거 포장지와 테이크아웃 플라스틱 컵 그리고 백미러에 걸린 묵주인지 염주인지 모를 말라 팔찌를 보며 그동안의 조조가 지나 온 자유로운 여행자의 궤적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조조의 픽업트럭이 어떤 외제차보다 멋지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