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의 집은 현무암으로 돌담을 쌓은 농가주택이었다. 늦은 밤에도 쨍한 오렌지색 지붕을 얹은 안거리와 밖거리가 마당을 중심으로 ㄱ자로 배치되어 있고, 마당 한 켠에는 주인이 없는 푸른 지붕의 개집이 있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달빛은 더욱 환해져서 안거리로 가로지르는 마당 안에 밤이슬을 머금은 잔디가 파르르 반짝거렸다.
“개는 어디 있어?”
“개 없어. 그냥 개 집을 두면 집을 잃은 개가 쉬어갈까 해서 둔 거야.”
“원래도 없었어?”
“응 난 한 번도 개를 키워본 적 없어. 개는 외로움이 두려운 사람들이나 키우는 거야. 난 외로움이 좋아. 외로움으로부터 오는 고독은 나를 만나는 시간이니까.”
나는 조조의 얘기를 들으며 고독을 노래한 릴케의 시가 떠올랐다. 조조는 고독을 입은 고요 속에서 천천히 자신 속으로 몰입하고 있던 것이다.
거실로 들어간 조조는 가장 먼저 진공관 앰프를 켜고 턴테이블 위에 <Beyond the Missouri Sky>를 올렸다. 재즈계의 두 거장 팻 메스니와 찰리 헤이든이 함께 만든 앨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기교를 구사하지 않아서인지 마치 편안한 대화처럼 들렸다.
나는 낡은 카멜색 소파에 앉아 조조가 내려주는 커피를 기다렸다. 바닷바람에 끈적해진 허벅지가 싸구려 가죽 소파에 쩍쩍 달라붙었다.
조조는 핸드밀에 예가체프 홀빈을 갈고, 뜸을 들이고,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걸친 다음 천천히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내리는 조조의 비스듬한 뒷모습이 비스듬하게 쓴 ‘고독’이라는 글자처럼 보여서 그 뒷모습을 조용히 안아주고 싶었다.
고독이 자라나는 것은 소년이 성장하듯
고통스러우며,
봄이 시작되듯 슬프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착각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있어야 될 것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고독,
크고도 내적인 그 고독뿐입니다.
자기 자신 속으로 몰입하여
아무와도 만나지 않는 것,
그런 것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