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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Dec 06. 2020

대독이 도대체 뭐라고

대독: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축사나 식사 따위를 읽음. '대신 읽음'으로 순화.


어느 날, 그가 행사에 다녀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심사를 하고 상까지 주는 행사였다.

"본인이 와서 상을 주고 있음에도 사회자가 상장의 내용을 읽고 '대독'이라고 하더라."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했다. 사회자가 엄청난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혹시 내가 사회를 보는 일이 생기면 절대 그런 실수를 하지 말라고 나한테 조언을 해 주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대독은 사전상의 대독, 즉 대신 읽어줄 때의 대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상황은 대독이 확실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달랐다. 본인이 와 있는 상황에서는 대독이라고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를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충고'를 해준 것이기 때문에 틀리거나 다른 부분, 혹은 다른 의견이 있을 때는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일반적으로 쓰지 않는 것과 잘못한 것은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일반적으로 쓰지 않는 표현인데 써서 이상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정말 말 그대로 대독은 대신 읽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말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나의 말은 "사장님 부사장님께서 들어오십니다."라고 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실로 뜬금없었다. 여기에서 압존법이 튀어나올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되니 여기서 왜 압존법이 나오냐는 말은 하나마나한 말이었다. 한참을 설교하더니 결론은 도돌이표였다. 당사자가 앞에 있을 때 읽어줄 때는 '대독'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난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는 대부호가 있는데 유언장을 읽을 수가 없으니 옆에 있던 변호사가 대신 그 내용을 읽고 '대독'이라고 하면 그 역시 잘못된 건가요?"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그 예시는 대독이라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 적용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것만큼 극단적이고 정확한 예시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생각이 짧았다.

그렇다면 그가 좋아하는 팩트를 찾아가야 한다. 상장을 주거나 수여할 때 본인이 와 있다면 대독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나 규칙 같은 것이 있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그의 말을 그렇게 신뢰하지 못했기에 찾아봤더니 마땅히 그런 규칙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렇게 대화가 이어지다 보니 결국 처음 말했던 '틀린 것은 아니고, 잘 쓰지 않는 것이라 생략해야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아니겠냐고 했다. 그랬더니 내 말이 맞으면 '이하동문'이라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단어인 '이하동문'이 튀어나왔다. 왜 갑자기 튀어나온 이하동문인 것일까? 압존법만큼 황당했다. 이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내가 누구랑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 정신이 몽롱해 갈 때쯤 그가 쐐기를 박았다.


"행사하거든 너는 그렇게 해. 대신 한테 배웠다고 하지 마."


"네, 저는 배운 거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결국 혼자 이 논쟁의 결론을 냈다.

<일반적으로 본인이 와서 상장을 주는데 대신 읽어주게 되면 '대독'은 생략한다. 하지만 해도 문제는 없다. 수여자 대신 다른 사람이 상장을 전달해 줄 경우 '대도'라고 한다. 다만 이 경우 상장을 읽고"수여자가 일이 있어서 대신 누가 전달합니다" 같은 멘트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읽은 뒤 '대독'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 라고 말이다.

이렇게라도 정리하지 않으면 내 정신이 혼미해질 것만 같았다.


사실 대독이 대체 뭐라고 이런 논쟁을 해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아~ 그러셨구나~'하고 넘어갔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의 말대로 분란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 '너는 그러지 마라'는 식의 대화로 시작되다 보니 바로 잡고 싶었던 것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의 노하우를 배우는 것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확한 내용도 아니면서 강요하는 것은 온 마음을 다해 거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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