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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r 12. 2021

이직과 약속

샘플 3-1

이직을 하면서 세 가지 약속을 받았다.


첫 번째, 대학원을 다니게 해 주겠고, 시간과 등록금을 준다. 

두 번째, 잘 돌아다닐 수 있도록 차량을 마련해 주겠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했던 세 번째, 할 말을 하고 살 수 있게 해 준다.


이전 직장에서 속병이 들대로 들었던 터라 세 번째 약속이 제일 중요했다. 앞의 두 약속은 지켜지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약속들은 아주 조금 지켜졌다.

첫 번째 약속에서 금전적인 부분은 연구의 일부를 참여하게 되면서 받은 인건비로 퉁쳐졌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시간은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 시험을 위해, 논문을 위해 시간을 뺄 때마다 눈치를 받아야 했다. 저녁에 술자리에 가지 않는다고 공사 구분을 하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두 번째 약속도 연구의 일부에서 차량을 몇 개월 렌트해 주면서 퉁쳐졌다. 나는 여전히 뚜벅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불편하지 않으니 괜찮다. 샘플3이 차량을 렌트하게 된 것으로 생색을 내서 그렇지.


제일 중요했던 세 번째 약속은 약 1년 정도는 잘 지켜졌다. 나는 일과 관련된 나의 의견을 편하게 낼 수 있었고, 샘플3과는 수평도 수직도 아닌 그나마 기울어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서로의 의견이 달라서 다툴 때도 있었지만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었고, 그 다툼으로 얻어진 지혜를 일에 반영하곤 했다.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런 대화들이 진행되지 못했다. 샘플3의 의견에 의문을 갖거나 새로운 의견을 보태면 '토를 단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외부의 사람들에게 내게 혼난다고 말했다. 자신은 농담처럼 했다고 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 농담 때문에 안팎으로 혼나야만 했다. 까불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샘플3은 삐치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냥 삐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내 주변 사람들은 다 느낌이 있었던 모양인지 이런 물음을 받았다.


"같이 일하는 사람끼리 왜 삐쳐?"


그리고 어떠한 사건을 기점으로 알게 되었다. 세 번째 약속은 이제 지켜지지 못할 것이었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동료 관계는 내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고 의미가 완전히 달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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