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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r 17. 2021

뒤 돌아보다-2

샘플 3-5

샘플3은 집에 잘 가지 않았다.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본인이 가장으로서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이 없고,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돈을 잘 벌지 못하는 직장인 걸 알고 있음에도 박봉이라고 구박하는 집식구가 싫다고 했다.


완전 이직을 하기 전, 거의 한 달 동안 합숙을 하면서 현안을 대응했던 적이 있다. 일이 일찍 끝났던 날, 그는 다른 분과 술을 먹고 완전 취해서는 내가 옆에 있는데도 아내의 중요 신체부위를 만지고 싶다고, 왜 본인을 곁에 가지 못하게 하느냐며 짜증을 부렸다. 일을 정리하느라 술을 같이 먹고 있지는 않았음에도 한 자리에 있었기에 내가 들은 말이 정말 그 말인지, 아님 잘못들은 건가 싶었다. 그러나 함께 술을 드시던 분이 깜짝 놀라서 술자리 정리는 본인이 하겠으니 일 정리는 안에 들어가서 하라고 해서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못 들은 척 얼른 방에 들어가서 방 문을 잠갔다. 그때, 이직을 그만뒀어야 했다. 나는 이 전조현상을 무시하고 말았다.


이직은 이뤄졌고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는 일이 자주 있다가 보니 퇴근하고 나서 사무실에서 피자에 소주도 먹고, 밖에 나가서 맥주도 먹곤 했다. 술을 먹으면서 하는 얘기는 대부분이 일 얘기였지만 자연스럽게 가족 얘기도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애인이 있었다고 했다. 샘플3은 결혼도 했고 아이도 둘이나 있었다. 애인이 있는 동안 그 사람한테 자랑스럽게 보이기 위해 일을 더 열심히 했다고도 했다. 불륜을 저질렀다는 말에 황당해서 뭐라고 했지만 더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본인 인생이지 내 인생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불쌍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를 왜 싫어했는지 이해가 됐다. 아마 알아챘을 것이다.


살짝 돌아보면 은근한 희롱들은 있어왔다. 직접적인 것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내가 너무 관대해서 생긴 오해였다. 


내가 샘플2와의 일반적이지 않았던 연애를 끝냈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노골적으로 변했다. '너는 나 싫어하잖아~ 나는 아닌데~'라던지 '손이 작은데 한 번 만져봐도 되냐'는 등의 말과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의 유대관계 속에서 그 부분 역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이런 상황이 생기리라고는 예상하지도 못했다. 

남자랑 둘이 일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절대 그럴 일 없다면서 안심시켰던 내가 바보였다. 나만 잘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계속 돌아보다 또 돌아보니 그날의 사건이 이 일의 시작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지속적인 가해를 받아오고 있었고, 내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묵인해 오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돌아볼수록 학연 혈연이 묶여 있는데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관대하게 굴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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