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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r 18. 2021

직책

샘플 1-3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 간사라는 직책을 얻었다. 하지만 나는 활동가라고 불리는 것이 좋아서 명함도 활동가라고 찍었다. 밖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직책을 물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간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연차가 쌓여서 후임이 생겼다. 나보다 10살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일을 일찍 시작한 편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짝 문제가 생겼다. 우리를 안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은 내가 후임인 줄 안다는 것이다. 사실 나를 후임으로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게 없었다.

내가 하던 일을 이 분이 덜어가신 거라서 아직 의존하는 일이 많았고, 내가 설명해주고 혹은 내가 처리하는 부분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보다 그분이 무능력하게 비쳐지는 것이 문제였다. 그때마다 하하호호 웃어가며 "제가 선임이에요, 어려 보이는데 엄청 신기하죠!"라고 했는데 샘플1에게는 그 모습이 나의 잘못으로 보였나 보다. 그걸로 참 많이 혼났다. 그렇다고 내가 무시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느 학교와 MOU를 맺는 날이었다. 교장선생님은 내내 담당자였던 나를 무시하고 다른 동료에게 친근하게 이야기를 건넸다. 일을 마무리하고 복도에 나와 그 동료가 내가 선임이라는 것을 말하자 그 교장선생님(여성이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봐)은 내 어깨에 손을 턱 하고 올리시더니, "내가 김 간사 같은 딸이 있어."라고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직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직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어리면 외부에서 이런 식으로 무시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최고 선임자가 본 모양이다. 아마 안 좋은 내 표정도 보았는지,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에게 이제 후임도 들어왔으니 직책을 올리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런 상황을 캐치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결정해 주시는 대로 따른다고 했다.

최고 선임자는 샘플1에게 자꾸 이런저런 오해들이 생기니 나의 직책을 올려주자는 제안을 했다. 결정권은 본인에게 있었지만 그의 의견도 존중하려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박에 반려되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싫어서라고 했다. 나는 4년을 일하고 그만둘 때까지 간사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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