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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r 21. 2021

친해서?

샘플 4-2

어느 날의 회의였다.

두 달에 한 번 하는 정기적인 회의였지만 논의할 안건이 없었다. 그냥 보고만 있는 회의였다. 샘플4는 그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회의에 안건이 없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러고는 주섬주섬 자신의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회의의 '장'이었다.


이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간다.

샘플4와 공동으로 장을 맡고 있는 T와 그녀가 통화를 했다고 한다. 회의하기 전에 장끼리 논의를 한 것이다. 그때도 이야기는 회의 안건에 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평소에 회의 자료를 사무처를 맡고 있는 내가 만드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 그녀가 회의 안건을 상정하는 권한은 장에게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T는 장이 안건을 골라서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 상에서 상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냐 되물었고,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사무처장과 전국 조직에 내용을 확인해보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 전화 후의 회의였다.


샘플4가 미리 논의가 없는 상태로 주섬주섬 서류를 꺼내는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가 서류를 꺼낼 때마다 '이번에는 또 무엇인가'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그 회의에는 많았다. 다들 그걸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이번에 꺼내 든 서류를 건네며 회의 안건 상정의 권한은 '장'에게 있음을 또 한 번 강조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회의 안건 상정이라는 범위가 장이 안건을 넣고 안 넣고를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조차 부정하는 듯하였다. 언급하였듯 본인은 단독 장이 아니라 '공동'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거기에서 발생하지 않았다. 본인이 안건 상정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배경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T와의 통화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불만은 그것이었다.

'같은 장'이 이야기하는 것은 왜 믿지 못하고 낮은 급인 '사무처장'에게 그것을 물어보냐는 것.

그 이야기를 들은 모두는 황당한 마음을 가졌다. 그것은 T의 버릇 흑은 과정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묻는 행위 말이다. T는 그녀에게 말한 것처럼 나에게만 묻지 않았다. 상급 기관에도 이를 확인해 보았다. 그것은 그냥 과정이었을 뿐이었다. 실무를 하고 있는 사람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판단했던 것이다.

T의 이런 말에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둘이 더 친해서 그런 거잖아요!"


세상에나 마상에나 그녀는 그냥 과정을 친분에 의한 따돌림, 혹은 위계질서로 이를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무처가 더 잘 알 수도 있고, 장이 더 잘 알 수도 있다. 이건 그냥 사실을 확인해보고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누가 높아서, 누가 친해서 맞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T는 그날 회의에서 화가 많이 났다. 본인의 의도를 마음대로 해석당한 것에도, 회의에서 무례하게 군 그녀에게도 말이다.

그녀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생각해봤다. T와 다른 회의 구성원인 R은 나와 동갑이다. 그녀는 그것을 질투했던 것일까? 회의는 지쳐만 갔고, 우리의 이야기는 샘플4에게 먹히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의 이야기가 모두 '친하기 때문에'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는 그녀가 나를 일을 못하는 사람으로 몰고 가는 행위를 하기 전까지 긴밀하게 연락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냥 필요할 때 연락하고 회의 때나 만나는 그런 사이였다. 그런데 그녀 덕분에 자주 연락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그 회의에는 가장 나이가 많으신 분이 있었다. 샘플4보다도 나이가 많으신 분이었다. 그녀는 우리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다가 그분이 서로 소통이 필요하겠다며 사무처와 공동 장들이 대화가 필요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자 바로 수긍을 했다. 우리가 했던 똑같은 이야기는 수긍하지 못하고 화를 내고 있었던 그런 찰나였다.


그날의 폭풍 같은 회의가 끝났다. 그녀가 말했다.

"기분 나쁘셨을 수도 있는데 제 이야기를 들어주신 여러분들 감사해요"라고.

상처를 내고, 후비고,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빨간약이 아니라 알보칠을 발라 놓고 봉합하려고 했다. 틀렸다. 봉합은 글러먹었다. 

그녀의 마음은 그렇게 풀렸는지 모르겠다.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후에 그렇게 하지 않았겠지.

샘플4의 마음이 어쨌거나 나는 그동안 참고 숨겨놓았던 마음이 그때부터 갈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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