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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r 31. 2021

연차[연차 유급 휴가]

샘플 3-10

우리 내규에는 입사 시 첫 급여와 퇴직금만 명시되어 있다. 물론 그 역시도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퇴직금에 대해서는 바꿔야 한다고 수차례 지적받았음에도 바뀌지 않았다.

살림이 넉넉지 않아서 최저시급을 맞춰줄 수 없었고, 지원을 받기 위한 법적 요건을 맞추기 위해 출근시간을 10시로 조정했다. 그럼에도 적은 급여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일반 회사보다는 자유로운 것에 만족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연차 규정은 당연히 없었다. 물론 법적으로는 5명 이상이 아니기 때문에 필수조건이 아니기도 했다. 병원에 가거나 개인 일이 생겼을 경우 양해를 구하고 쉬거나 오전만 업무를 하거나 했다. 그간은 이런 방식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을 샘플3이 문제 삼기 시작했다. 자신은 쉬지 않는데 두 사람이 너무 쉰다는 식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쉬지 말라고 한 사람은 없었음에도 말이다. 여름휴가도 5일을 주겠지만 월~금을 쉬는 것은 하지 말라고 했다. 앞뒤의 토요일과 일요일을 합치면 9일을 쉬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두 분을 오랫동안 보지 못하는 것이 속상해서 그런 거라고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해가 될 리 만무했다. 이런 억지들이 비일비재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연차를 만들자고 했다. 내가 샘플3을 피해 주말여행을 가지 않자(준비는 다 했다) 내놓은 말이었다. 그러면서 "연차 날짜가 정해져 있어야 두 분이 쉰다고 말할 때 짜증이 나지 않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원래 연차는 근로자의 휴가를 보장해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인데, 그는 이를 규제처럼 이용하려고 한 것이다.

연차를 만드는 것에는 동의했다. 다만, 연차 날짜를 정하는 것처럼 야근수당이나 대체휴무와 관련된 규칙도 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는 만들고 상은 안 만드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돈 없는 거 뻔히 알면서!"였다. 맞다. 알고 있다. 야근 수당이나 주말 수당을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쉴 수 있는 시간을 주거나 현재의 방식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 엄청 쉬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실제로는 한 달에 많아야 이틀이었고, 생리휴가까지 하면 사흘 정도였다. 그건 샘플3이 제안한 연차 날짜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차가 만들어지면 연차를 다 소진하지 못했을 때도 고려해야 한다. 연차 수당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만들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냥 연차 날짜만 정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명언을 했다.

"주말에 일 하기 싫으면 연차를 쓰고 일 안 하면 되잖아."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극대노를 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쉬는 주말에 일을 하면 주말 수당을 챙겨주거나 대체 휴무를 줘야 하는 거지 그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연차를 쓰라는 게 대체 어디에 있는 말이냐고, 연차를 이해하기는 하는 말이냐고 했다.

리더라는 사람이 어떤 일을 제안할 때는 그 일에 대해서 그래도 좀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연차를 만들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에 걸맞은 다른 규정들도 함께 만들자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건 죽어도 안된다고 우기고선 결국 "그래, 하지 마."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밖에다가는 마음대로 쉬려고 한다고 또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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