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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Apr 07. 2021

방어선

샘플 3-16

샘플3은 나에게 개인 연락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물론 밤에 전화를 하는 것도 포함이었다. 어이없게도 이건 바로 다음날 깨졌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되는 거지만 업무적으로 중요한 일 일까 봐 안 받을 수가 없는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렇기에 샘플3을 포함한 세 명이 들어가 있는 단톡방은 나에게는 방어선과 같았다. 그가 개별 연락을 해도 큰 문제가 없는 한 나는 단톡방에 대답을 했다. 단톡방은 방어선이자 방공호 같은 것이었다.


운영회의가 있던 날 술자리에 가지 않았다. 샘플3은 그날 밤 11시쯤 다음 날 아침에 회의를 하자는 톡을 남겼다. 다른 동료는 오전에는 일정이 어렵다고 답장을 했고, 나는 이미 다음날 자리에 없다고 공유가 되어 있었다. 씻고 있던 나는 15분 정도가 지나서야 그들이 대화를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대화방은 보고는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동료가 편히 주무시라고 답을 한 지 7분, 본인이 대화를 시작한 지 12분 만에 그는 이렇게 말을 남기고 톡방에서 나가버렸다.


"이 방 없는 게 좋겠어요. 일단 저는 나갑니다. 업무 이외의 시간에 이런 판단해서 정말로 미안합니다."


나는 샘플3을 다시 불러들였다. 이미 다음날 자리에 없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오전에 회의를 하겠다고 한 것과, 톡방과 관련해서 논의도 없이 나간 부분은 옳은 행동은 아니라고 말했다.

손이 벌벌 떨렸다. 톡 하나를 쓰는데 5분이 걸렸다. 이제 샘플3이 개인 연락을 해 올 것이라는 불안감과 공포심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어떻게 해야 그가 톡방에 그대로 머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면서도 왜 내가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인지 왜 그의 행동에 내가 힘들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어르고 달래야 하는 것인지, 제대로 말을 해 줘야 하는 것인지 고민을 거듭하고 떨리는 손으로 톡을 보냈다.


"업무와 관련된 톡은 개인 톡으로 하는 것보다 단체톡으로 하는 게 맞다고 판단합니다. 그게 허언이나 실언이 덜 하겠지요. 술 드셔서 그런 건지 맨 정신으로 그러신 건지 모르겠지만 최근의 행동이나 말씀들이 두서없고 경솔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주 하시는 말을 빌어 나중에 제대로 이야기하시죠.

나름 중요한 일이 있어서 오늘 밥도 술도 안 먹은 것인데 다 지난 밤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 마음 불편하게 하시는 것도 재주시네요. 비꼬는 거 맞구요."


톡을 읽은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게 샘플3은 또 톡방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샘플3은 본인의 일정을 나에게 문자로 보냈다. 심장이 벌렁벌렁거렸다. 잊고 있던 공포심이 발현되었고, 잘못하면 내가 사무실에서 사고를 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1년 하고도 반년 만에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그날의 사건을 이야기했다. 무너진 방어선을 어떻게든 세우고 싶었다. 나는 일을 너무 하고 싶었다. 


방어선이 무너진 뒤 사무 공간은 내게 지옥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지옥 구덩이의 뚜껑이 한 달 반 만에 닫혔다. 샘플3이 톡방에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잠깐 사이 스며든 지옥불은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원래 지옥이었고 지옥불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동안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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