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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Apr 09. 2021

안녕하세요, 그리고 안녕히 계세요.

동료들에게 보내는 퇴사 메일

새로 일하게 되면서도 인사드리지 못했는데, 이렇게 떠나가면서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신입활동가 수련회에 가지 못해서 동기도 없었지만 많은 활동가들이 챙겨주셔서 여지껏 잘 버텼습니다.

대학 졸업 전부터 환경판에 발을 담궈서 벌써 12년 차가 되었다는 것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곳에선 7년이네요. 그러나 이제는 발을 살짝 빼 보려고 합니다.

참 재미있고, 보람찬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일들은 영영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가리왕산이 해결되는 걸 결국 못 보고 끝내는 건 아마 두고두고 후회할 겁니다.


저는 시작부터 막내였습니다. 1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지역에서는 막내라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새로운 리더십이나 새로운 방식은 제안하기도 실현하기도 힘든 현실은 견디기 어렵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오래 버텼습니다.

언젠가는 새로운 때가 오리라, 언젠가는 불합리하고 힘든 일이 끝나리라, 언젠가는 말도 안 되는 일에 참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리라고 믿었습니다. 믿음은 깨지기 마련이었고, 굳은 믿음은 실망감을 크게 만들 뿐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은 참 많습니다.

그 일들을 이 판에서 해내고 싶었고, 우리의 업적으로, 우리의 희망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외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일반이라면 일반인, 자연인이라면 자연인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사실 직업병을 떼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만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어떤 다른 방식으로든 이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참 큰일입니다. 우선은 쉬겠지만요, 하하하...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 메일을 봐주실지는 알 수 없지만, 속시원히 말하지 못하는 것 역시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주변의 활동가들을 한 번씩 돌아봐주세요. 왜 떠나가는지, 왜 떠나지 못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아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역의 후배 활동가들이 이제 얼마나 남았는지도 돌아봐주셨으면 합니다.

더 당부드리고 싶은 말은... 자신을 꼭 돌봐주세요.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조직을 사랑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나만 참으면 돼.'는 마법의 말 같이 보이지만 세상 어디에 해독제도 없는 독이더군요.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제발 본인을 혹사시키고, 본인을 갉아먹는 활동을 하시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채 제대로 건네기도 전에 안녕히 계시라는 말을 건네서 죄송합니다. 우리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얼굴로 만나요. 다들 너무 고마웠고, 함께 해서 행복했어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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