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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Apr 20. 2021

크롬

샘플 3-21

샘플3이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브라우저는 익스플로러다. 속도 등을 이유로 크롬이나 다른 것을 쓰는 것을 권유했으나 사용하지 않았다. 꼭 써야 할 이유는 없었고 나 역시도 권유만 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는 불만도 별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깔아는 줬다.


간혹 샘플3의 컴퓨터를 쓰게 되는 상황이 오면 자연스럽게 크롬을 켰다. 크롬을 사용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첫 화면은 자주 쓰는 사이트들이 뜬다. 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예 없거나 다음 등 주요 사이트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이상한 영어로 쓰여 있는 사이트들이 있었다. 처음 발견했을 때는 눌러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그의 컴퓨터를 쓰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악할만한 일이 일어났다. 크롬을 켜자마자 팝업창이 떴다. 그리고 그 팝업창은 살색으로 가득했다. 야동 사이트의 팝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영어로 써 있는 사이트들은 전부 야동 사이트들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분들도 가끔 와서 샘플3의 컴퓨터를 쓰기 때문에 그들이 나처럼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할까 말까, 아는 척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오랜 시간을 고민하다가 그냥 묻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걸 입으로 내뱉는 순간 안 그래도 대화 없이 삭막한 공간이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냥 내가 크롬을 썼다는 뉘앙스만 풍겼다.


샘플3의 자리는 내 자리의 정면이었다. 모니터에 가려서 얼굴이나 몸통이 보이지는 않지만 모니터 다리 아래로 샘플3의 옆 다리가 보였다. 전에는 그나마 모니터로 그를 가려서 마음이 편했는데 그 이후로는 다리가 보이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가끔 둘만 있을 때 샘플3이 모니터를 보면서 아무것도 작성하고 있지 않은 상태로 몸을 들썩일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 그마저도 공포로 다가왔다.


동생에게 이런 상황과 이런 마음을 이야기했다. 동생은 바로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남겨놓으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 그런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 얼마나 방어를 못하고 있었던 것인지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얼른 동영상과 사진으로 증거를 남겨놨다. 사무실에서 자주 잠을 자는 그가 대체 사무실에서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상상하기는 싫었지만 혹시 모를 일은 대비해 둬야 했다.


이렇게 야한 동영상에 대한 일은 증거를 남기는 것으로 끝이 날 줄 알았지만 한 번 더 경악할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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