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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Apr 21. 2021

윈도우10

샘플 3-22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7의 기술지원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오랜 설득 끝에 우리 사무실도 윈도우10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도움은 컴퓨터를 잘 다루는 남자 친구가 주기로 했다.

내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진작에 개인 사비로 SSD와 윈도우10으로 변경했던 터라 그냥 두면 되었고, 샘플3과 동료의 컴퓨터는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이게 오랜 설득의 이유였다. 재정이 워낙 좋지 않기 때문에 그 마음도 이해가 되기는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정품이 아닌 것을 쓸 수는 없었다.


날짜를 정하고 하루 전 날 다시 한번 컴퓨터를 윈도우10으로 바꿀 것이고 다른 건 괜찮고 바탕화면에 있는 것 정도만 드라이버로 옮겨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남자 친구는 하루 연차를 내고 사무실로 찾아왔다. 우리 사무실 일 때문에 연차를 낸 것이 참 미안했는데, 거기에 보태서 샘플3은 남자 친구의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 고개를 까딱하며, "아, 네."로 답했다. 남자 친구한테 딱딱하게 하고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까지 저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원래는 윈도우10으로만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동료와 샘플3이 속도가 워낙 나오지 않고 멈춘다는 얘기를 해서 SSD를 추가로 구매하기로 했다. 하는 김에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SSD를 사러 가려고 나서기 전 남자 친구는 샘플3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살짝 물어보니 메인 드라이버의 용량이 거의 꽉 차 있었다는 것이다. 뭘 깔아야 그렇게까지 꽉 차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얼마나 관리가 안 된 것인지 그러니 속도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상했다. 내가 전전날 확인했을 때까지만 해도 메인 드라이버는 용량이 널널했다.




그리고 SSD를 사 왔다. 동료의 컴퓨터는 새단장을 했고, 나는 잘잘한 세팅을 해주고 있었다. 같은 시간 남자 친구는 샘플3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내 이렇게 외쳤다.


"찾았다. 하."


뭘 찾은 것이냐고 묻자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메인 드라이버 안에 들어가고 들어간 파일에는 샘플3의 이니셜이 있었고 그 안에는 몇십 기가의 야동이 들어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시간까지도 다운로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혹시 다른 동료가 들을까 봐 조심조심 말하던 남자 친구는 "어떻게 해? 지워? 다운되던 건 어떻게 해?"라며 이야기했다. 나는 동료에게 상황을 조금 설명해 줬다. 그리고 남자 친구에게는 다운되던 건 멈추고 받은 건 지우지 말라고 했다. 자신이 받아놓은 걸 들켰다는 걸 알면 얼마나 쪽팔리겠냐고, 다운로드 중지시킨 것만으로도 들킨 걸 알아채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안 하지 않겠냐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가 누굴 걱정한 건가 싶다. 그러나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진짜 몇십 기가의 용량만큼 동료로서의 인정이, 조금의 이해가, 인류애마저 사라져 버렸다. 


샘플3이 윈도우10으로 바뀌면 본인이 내려받던 사이트를 이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컴퓨터를 손 볼 것이라고 미리 이야기를 했고, 심지어 SSD를 사러 간 사이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다운로드를 하고 있었고, 받아놓은 파일을 옮겨놓지 않은 것 자체가 나를, 나의 남자 친구를 기만한 행동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아마 샘플3은 그런 행동으로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과신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전의 크롬 사건과 이번 사건으로 나는 그의 컴퓨터 근처에도 가기 싫었고, 끈적거리는 그의 마우스와 키보드를 만지기도 싫었다. 사무실에 밤늦게까지 있는 것이 '너무 많은 일' 때문이라며 우리를 일과 시간에만 일하는 게으르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평가했던 샘플3이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한 번 깨진 신뢰도는 붙이기 어렵다지만 깨진 신뢰도를 죽어라죽어라 가루가 될 때까지 더 깨부수는 행동은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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