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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Apr 23. 2021

고향 가는길

버스, 구터미널과 신터미널 그리고 이름

실로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왔다. 코로나 때문에 명절도 두 번이나 건너뛴 뒤다.

이러나저러나 뚜벅이이기도 하지만 워낙 시내버스 타는 걸 좋아해서 서울에서 태안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아닌 서산까지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그곳에서 내려서 시내버스를 타고 갈 요량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시내 터미널에 도착해서 우리 집까지는 시내버스를 타고 30분 이상을 가야 해서 시내버스를 탈 기회가 있지만 오늘만큼은 짐이 많아서 엄빠 찬스를 사용했다. 시내 터미널까지 데리러 오시기로 했다(사실은 일하러 나오시는 김에 데리고 가주시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가는 길목에 있는 고속도로에서 난 사고의 수습이 끝나지 않아서 내가 좋아하는 삽교천 길로 버스가 빙글 돌아서 가게 되었다. 고향에 가는 것보다도 오랜만이었다. 한쪽은 바다, 한쪽은 호수인 그 길은 예전만큼 울퉁거리지는 않았고, 예전처럼 버스에서 바다 냄새를 맡을 수도 없었지만 고향에 가고 있는 기분을 한 껏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서산에 도착해서는 20분을 기다려서 시내버스를 탔다. 그동안 태안 시내로 가는 시외버스를 4대나 보냈다. 아직도 버스에 타면서 종착지를 말해야 요금을 찍어주는 아주 번거로운 시스템이지만 이렇게 승객과 기사가 한 번이라도 대화할 수 있는 버스가 어디 있겠는가. 조금 헛갈리는 건 터미널마다 탈 때 찍어야 하는 곳이 있고 내릴 때 찍어야 하는 곳이 있고, 탈 때 요금을 찍지 않았다면 내릴 때 앞문으로 내려야 요금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 10년 넘게 버스 하차를 앞문으로 했으면서 성인이 되어서 뒷문 하차 10년 넘게 했다고 이제는 앞문 하차가 어색하다.

버스는 출발 5분 전 터미널에서 사람들을 태우기 시작했고, 기다리던 사람들은 탑승했다. 거의 다 탔다고 생각한 시점 어떤 분이 기사님에게 물었다.


"태안 가죠?"

"태안 어디 가시는데요? 구터미널? 신터미널 가실 거면 시외버스 타세요. 아, 옆에 왔네요. 저거 타세요."


태안에는 구터미널과 신터미널이 있다. 말 그대로 옛날 터미널과 새로운 터미널이다. 이렇게 들으면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된 것 같지만 기억으론 아마 20년은 넘었을 것이다.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신터미널이고, 이제는 터미널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곳은 여전히 구터미널이다. 구터미널은 언제쯤 터미널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르게 보니 우리는 아직도 부모님에게는 아이처럼 보이고, 부모님은 조부모님께 아이처럼 보이는 것이 우리가 신터미널과 구터미널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역을 기억하는 것과 그것의 이름은 그때의 추억도 함께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더웨이'라는 편의점은 이제 진즉에 없어졌지만 우리는 아직도 대학교 후문 편의점 앞에서 보자는 말을 "후바에서 보자!"라고 하기 때문이다.

어?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의 대로는 벌써 만들어진지 몇십 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동네 사람들은 '신작로(국어사전:새로 만든 길이라는 뜻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게 새로 낸 길을 이르는 말)'라고 부른다.


사투리도 지역을 나타내는 참 좋은 언어이지만 지역에서만 신조어(?)도 지역의 역사를 담는 말이 아닐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니, 더 늦기 전에 동네의 말을 정리한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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