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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Apr 24. 2021

미나리와 제철 음식

우리 집은 버섯 농사를 짓는다. 사실 버섯이 메인이기는 하지만 다른 농작물들도 가득 키운다. 그리고 키우지는 않지만 산에 들에 밭의 구석에 두렁에 먹을 것이 지천이다. 그러다 보니 집에 오면 제철 음식을 먹기 좋다. 도시에 있을 때는 마트에 가서 살 생각도 하지 않을 식재료인데 말이다.


어제는 미나리와 상추가 식탁의 주인이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거머리 때문에 미나리는 미리 식초에 담가져 있었다. 어릴 때는 거머리를 참 많이 봤는데, 요즘은 참 보기 힘들다. 거머리가 다리가 붙어서 피를 꿀떡꿀떡 삼키는 건, 으으.. 다시 보고 싶지 않지만 어쩐지 없어지는 건 더 괴롭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던 미나리는 깨끗이 씻어서 칼로 툭툭 잘라서 돼지 껍데기와 양파와 고추장과 함께 볶아졌다. 돼지의 잡내도 잡아주고 느끼함도 잡아주고, 아삭아삭 식감까지 일품인 볶음요리가 된다.

물론 그냥 먹으면 섭섭하니까 상추에 싸 먹기로 했다. 미리 따 놓은 상추가 조금 풀이 죽어 있길래 씻어줄 겸 찬물로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잠깐 찬물로 씻고, 몸을 담갔다고 금방 씩씩해졌다. 곧 내 뱃속에 들어갈 걸 아는지 모르는지 우선 싱싱해져서 다행이다. 상추는 맛녀석들이 와도 절대 안 입에 먹을 수 없을 만큼 컸다. (내 얼굴이 작긴하지만)얼굴을 가릴 만큼 커서 쌈을 싸 먹으려면 4등분을 해야 겨우 먹을 수 있었다. 마트에서는 판매되지 않는 크기와 맛이었다.

그리고 오늘 점심에는 미나리 부침개를 해 먹었다. 잡채를 해 먹기 위해 끊어놓았던 냉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돼지고기를 꺼내서 함께 넣었다. 역시 부침개는 가장자리가 가장 맛있다. 바삭바삭하고 고소하고 딱 내 스타일이다. 그리고 미나리는 역시 향이 일품이다. 돼지고기가 있든지 말든지 자기주장이 아주 확실해서 '아, 내가 먹고 있는 게 미나리구나'라고 잊지 않게 만들어 준다.




이런저런 식재료들을 수확하고 구경했다. 때가 살짝 지난 두릅을 따러 밭으로 올라갔다. 밭 뚝에 줄지어 있던 두릅나무는 이제 몇 그루 남아 있지 않았고, 이제는 손으로 딸 수 없는 높이까지 자라 있었다. 어릴 때 두릅 따오라고 하면 그 씁쓸한 맛이 별로여서 "얼마 없어!"라며 조금만 따 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 작은 키로도 충분히 딸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바닥을 보니 그 두릅들이 새끼를 쳐서 자라고 있었다.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두릅들도 세대를 교체하고 있는 모양이다.

두릅나무까지 가는 길에는 멍이(표준어 머위)가 가득했다. 오늘내일의 반찬이 되지는 않을 녀석이지만 살짝 데쳐서 쌈으로 먹으면 참 맛나다. 물론, 어릴 때는 멍이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저런 게 왜 맛있다고 먹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내가 그때의 엄마, 아빠보다도 더 나이를 먹었다. 아직도 찾아먹지 않는 것을 보니 어른 혹은 어른 입맛이 되기는 글러먹은 것 같지만 그래도 천천히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식재료를 발견했다. 화살나무는 조경수로만 보고 심어와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그 순을 무쳐먹을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이 곳은 순이 많이 올라와서 먹기 좀 애매하다고 해서 만들어져 있던 것을 먹었는데 이것은 흡사 고춧잎 무침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무침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것이 고춧잎 무침이기 때문에 이건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콜럼버스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아직 고추가 나오지 않은 봄에는 화살나무 새순을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니!

살짝 데쳐서 꼭 짜서 소금 조금, 참기름 조금, 조물조물하다가 깨소금 조금. 이렇게 간단한 레시피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지다니 봄나물(화살나무가 나물이 될 줄은 몰랐지만)은 정말 여러 의미로 대단하다.




내일은 무슨 식재료로 무엇을 해 먹을 수 있을까? 아까 엄마가 꺾어다 놓은 건 뭐였더라?

이렇게 봄을 만끽할 수 있는 식재료를 만날 수 있을 때 집에 온 게 언제였더라. 고향에 내려간다고 하니 꽃게가 제철이라며 부러워하던 친구를 위해서라도 이번엔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한 껏 누리다가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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