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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Apr 29. 2021

업무 일지

샘플 3-24

우리는 업무일지를 한글파일로 작성하였다. 같은 파일에 세 사람이 작성을 하는 방식이라 한 사람이 파일을 열어놓고 있으면 업무일지를 작성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각자 작성하는 방식이 달랐다.

샘플3은 그 파일을 거의 켜놓고 있었고, 다른 동료는 반상근이라 퇴근하기 전에 작성을 했다(물론 파일에 작성이 될 때만 가능했지만 말이다). 나는 다이어리에 직접 쓰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선호해서 우선은 다이어리에 정리하고 파일을 켤 수 있을 때 작성하곤 했다. 매번 업무일지를 쓰려고 파일을 열면 '읽기 전용'으로 열린다는 알람이 떴고, 그때마다 샘플3에게 파일을 닫아달라고 말해야 했다. 자꾸 같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다이어리에 쌓아놨다가 몰아서 작성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그게 업무 방식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샘플3이 내부 회의를 소집했다. 주제는 업무일지였다. 본인을 제외한 우리가 업무일지를 꼬박꼬박 작성하지 않으니 없애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해 줬다. 쓰지 않을 때는 파일을 닫아 놓으라고. 아니면 업무일지를 각자 쓰는 것이 어떻냐고도 물었다. 그랬더니 그것은 불편하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업무일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없애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번외의 이야기지만 샘플3도 업무일지를 매일매일 꼬박꼬박 쓰지 않는다. 그러면서 켜 놓고 있기는 한다.


궁금했다. 업무일지를 안 쓰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3명이기 때문에 급한 업무는 업무일지가 아니라 대화로도 충분히 가능한데 왜 매일 쓰지 않음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했는가에 대해서였다. 왜 갑자기 업무일지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샘플3은 대답했다.


"업무일지 파일을 열었는데, 전날까지 안 쓰여있으면 기분 나빠서요."


사실 일말의 기대는 '일'에 대한 부분 때문에 업무일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냥 '개인의 기분' 때문이었다는 것에는 절망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샘플3은 그 이후 업무일지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고, 여전히 불편했다. 결국 여전히 밀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회의가 다시 소집되었다.

또 우리만 잘못했다고 하는 그에게 다이어리를 보였다. 이렇게 작성이 되고 있지만 파일로 정리가 되지 않은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고, 방식을 바꾸자는 말을 또 했다. 하지만 샘플3의 이번 대답은 두 사람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업무일지를 없애겠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맘대로 하라고 했다. 사무실의 업무일지가 중단되었다. 나는 다이어리에 수기로 업무를 정리했고, 동료는 교육일지가 업무일지의 대신이었다. 그는 본인만 따로 업무일지를 쓰는 것처럼 파일을 만들어 놨지만 실제로 그 파일은 비어 있었다.


그 해 이후에는 나도 파일로 업무일지를 정리했다. 그 파일은 모두 열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빼놓는 날도 있었지만 최대한 작성했고, 수기로 쓴 다이어리와 합치면 괜찮은 자료였다. 하지만 나는 몇 년 뒤 외부에 '업무일지도 쓰지 않는 기본도 안 되어 있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소문의 근원지는 샘플3이었고, 업무일지가 없어진 원인을 모두 내게 전가해 놓은 상태였다. 심지어 대표도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길래 그동안 쓴 업무일지를 보여드리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사실은 확인하지도 않은 상태로 샘플3이 그렇게 말했기에 그의 말이 맞다고 했다.


샘플3은 왜 이렇게까지 나를 무능력한 사람으로 소문을 내야만 했던 것일까? 내가 잘하는 것은 본인이 잘 가르쳐서 그런 것, 못하는 것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프레임을 씌우는 일이 자주 일어났고 나는 그것을 그냥 참았다. 아니,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서, 그런 소문 따위 내가 능력을 보이면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열심히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나는 능력을 보였고, 소문은 일부 사라졌지만 견제는 더욱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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