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토로 Apr 30. 2021

재택근무

샘플 3-25

코로나가 창궐했다. 초반부터 어떤 종교단체의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그 종교단체는 사무실과 매우 가까운 곳에 지역 본당을 가지고 있었다.


사무실 구성원들은 전원 차량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아무래도 사무실까지 출근하는 것은 시내버스, 종교단체 등등 위험요소를 굉장히 많이 지나쳐야만 했다. 특히나 그 당시는 이 바이러스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불안했다. 재택근무를 원했다. 개인적으로는 메르스 당시에도 혹시 내가 옮기는 사람이 될까 봐 버스를 타고 멀리 가야 하는 집안 행사도 참여하지 않았을 정도로 관련된 부분은 예민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재택근무에 대한 결정은 대표나 샘플3이 진행해야 했다. 나와 동료는 샘플3에게 재택을 하자고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중앙 단위에서 재택을 결정한 부분을 예시로 들면서 이야기했지만 그것 역시 들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재택이 괜찮으면 계속 그런 방식으로 일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일까? 결국 우리는 대표에게 전화하여 샘플3에게 재택을 권고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대표는 이를 받아들여, 샘플3과 대화를 한 모양이었다. 샘플3은 그날 저녁 메신저로 다음날부터 재택을 진행한다고 알려왔다. 


재택은 순조로웠다. 온라인 드라이브를 미리 구축해 놓은 덕에 사무실 꼭 사무실 컴퓨터로 작업할 필요가 없었고, 전화는 돌려놓으면 되었고, 코로나로 사무실에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이상하리만큼 민원전화가 많이 와서 처리하는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사무실에 다녀가며 받는 스트레스보다는 훨씬 덜했다.

업무일지를 없애놓은 상황이라 업무에 대한 것이 문서로 공유되지는 않았지만 일상적인 업무 외의 일이 있을 경우에는 단톡방을 통해서 대화를 진행했다.


약 한 달 간의 재택근무를 진행한 뒤 사무실에 모였다. 


"다들 잘 쉬고 오셨나요?"


샘플3은 회의를 시작하자마 이렇게 말했다. 기가 찼다. 바로 재택근무는 '쉬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장소를 옮긴 것이라고 정정해 줬다. 듣는 척 마는 척하더니 또 '쉬면서...'라면서 또 대화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다른 동료가 "샘플3님은 재택 하시면서 쉬셨나 봐요?"라고 되물었다. 그의 인식에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박혀있던 것이다. 듣다 듣다 못해 업무일지 보여드릴까요? 무슨 일 했는지 정리해서 드릴까요? 했더니 필요 없다고 했다.




재택근무를 쉬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약과에 불과했다. 재택을 하는 동안 샘플3은 계속 사무실에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재택의 의미가 없었다. 다음 주부터는 근무형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반상근을 하고 있는 동료는 계속 재택을 진행하고, 나에게는 일주일에 2~3회 오전에 출근을 한 뒤 퇴근을 하라고 했다.

재택근무는 그런 의미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안된 방식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그렇게 진행된다고 한다면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는 사무실에 샘플3이 없어야 한다고도 알렸다. 시간을 나눠서 사무실을 나와야 올바른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며 그는 그 방식을 거부했다. 잠시 출근 뒤 집으로 가서 업무를 보는 것이 '퇴근'이 아님을 이야기했지만 역시 무시당했다.

근본적으로는 오전에 잠깐 출근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꼭 사무실에 나와야 하는 이유가 없음에도 그걸 고집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왜 꼭 출근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자신이 있어보니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코로나인 상황에서 사람들이 방문하는 것을 제한할 수 있었다. 문 앞에 전화를 진행할 수 있도록 안내장을 붙여놓으면 그만이었다. 문득 궁금해서 그럼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냐고 물었다. 5명이라고 대답했다.

5명, 일주일에 1명 꼴로 찾아온 것이었다. 샘플3에게 찾아온 그들이 그의 손님이었는지, 민원인 혹은 사무실에 찾아온 손님이었는지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고도 했다. 그의 말대로라고 한다면 사무실에 출근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5명이었어야 한다. 그래도 기억하고 있는 그들의 이름을 쭉 들어보니 다 샘플3의 개인적인 손님이었다. 사무실에 출근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아니었다. 하지만 샘플3은 그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그의 주장대로 업무를 진행하기로 했다. 더 이상 설명해줄 여력이 없었다.




동료는 그대로 재택을 진행했고, 나는 일부 사무실 출근을 진행했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했던 샘플3은 재택이 끝나는 날까지 한 마디도 대화를 진행하지 않았다. 사무실 출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더욱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재택근무가 끝나는 날 우리는 또 같은 말을 들었다.


"잘 쉬고 오셨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업무 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