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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y 03. 2021

내부 선거

샘플 3-28

일하는 곳에 내부 선거가 있었다. 전국 전체 조직의 리더를 뽑는 일이었기 시끌시끌했다. 어떤 사람이 3년을 이끄는 리더가 되느냐, 그 리더가 괜찮은 사람이냐는 나이와 지역, 연차에 따라서 극명하게 갈렸다. 나는 젊은 지역활동가에 속한 것과는 별개로 지지하는 후보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샘플3도 나와 같은 사람을 지지했다.

샘플3이 나와 같은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젊은 리더가 필요하다는 것과 다른 후보는 말이 통하지 않는 흔히 말하는 꼰대라는 것 때문이었다. '사돈 남 말하네.'라는 말이 깊이 차올랐다.


내가 그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혹시 내가 자리를 옮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중앙 조직에서 지역을 잘 돌보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1년 동안 교육과 책 작업을 하다 보니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서류를 보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선거가 끝나면 해당 후보에게 이 업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직을 논의할 생각이었다.

서울에 가서 살지 않더라도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혹은 온라인으로라도 서류를 봐주고 교육을 하는 일을 1년에서 2년 정도 한다면 지역들이 조금은 그 역할을 스스로 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고 나면 견디기 힘든 공포감도 좀 사라지고, 지역으로 돌아와서 마음 편히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웃기는 말이지만 일로 힐링을 하려고 한 것이다. 그것도 도미노 블럭 중에 하나였다.


사실 이 선거 전에 상담센터를 통해 조치를 취하는 것을 권유(라고 쓰고 명령이라 읽는다)를 받았지만 선거가 끝나서 잘 된다면 상황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 또 꾹 참았다. 최대한 문제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기대하는 일은 꼭 그렇게 빗나가는 것일까? 내가 지지하던 후보는 지역의 수많은 꼰대들에 의해서 낙선했다. 일하는 곳의 미래도 내 미래도 와르르 무너지고 바스스 부스러지고 있었다. 심지어 함께 발맞추고 고민하며 일하던 동료들도 하나 둘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실 그 선거가 지역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맘도 붙일 수 없고, 일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는 중앙의 동료들이 구원자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하고 싶었던 작업(책 작업)을 코로나인 상황에서도 결국 해냈고 결과물 마저 만족스러웠던 것은 일이 더 재미있어지는 계기이기도 했다. 두 권이 마무리되었으니 새로운 해에는 예상했던 나머지 네 권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모두에게 있었다. 그러나 이 선거로 그마저도 중단하기로 결정되었다. 맘을 붙일 곳도 일을 할 의욕도 없었다. 의욕보다는 맘 붙일 곳이 없다는 것이 먹구름처럼 몰려와서 머리 위에 장대비를 내렸다. 샘플3이 1년을 꼬박 고생해서 만든 책을 비하한 것은 덤이었다.


이렇게 하나의 도미노가 또 무너졌다. 원래 도미노가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속도가 붙는 것인지 그 이후에는 속도가 붙어서 일상이 송두리 째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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