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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y 04. 2021

더 힘든 건 누구?

샘플 3-29

상담센터는 우연한 기회에 다니게 되었다. 적은 급여로 상담센터까지 다니기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지원해주는 곳이 생겼다. 서울이었지만 코로나로 고속버스를 타지 않은지 꽤 되었지만 상담센터를 가기 위해서는 내가 생각한 위험요소들을 다 제쳐둘 수 있었다.

심지어 그때는 샘플3의 문제, 집안의 문제, 개인적인 문제가 겹치고 겹쳐서 어디라도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내가 견디기 어려운 시기였다. 6회의 프로그램이라 길지는 않았지만 일주일에 1번씩 맘을 터놓을 곳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마침 첫 상담은 재택근무를 할 때였다.


선생님을 만나고, 상담 서류를 작성하고, 기본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그리고 어떻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왈칵 울음부터 쏟아져 내렸다. 손수건을 챙겨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고 했으나 연신 쏟아내는 울음에 선생님이 건네주신 물을 안 마실 수가 없었다.

사실, 6번의 상담에서 수많은 일들을 다 조금씩 이야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것은 샘플3과 일하는 것이었나 보다. 샘플3과 있었던 갈등과 나의 고통을 이야기는 것으로 시간이 모자를 정도였다. 몰랐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갈등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6번 중 5번을 끝도 없이 울었다.


사무실에는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상담이 다 끝나면 결과를 가지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세 번째 상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재택이 끝났고, 하필 상담을 하는 날이 정기 회의를 하는 날이었다. 내가 없어도 되는 회의이기도 했지만 상담을 빠지는 것이 내게 좋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상담센터를 다니고 있어서 회의에 참석하기 어렵다고 알렸다. 샘플3은 어쩐 일인지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는 샘플3이 내가 '병원'에 갔다고 말했다고 한다. 참석자에게 전해 들었다. 


그 이후 샘플3은 타인과의 전화를, 그것도 아주 큰 소리로 진행하면서 이런 식으로 말했다. 그것도 연달아 2명에게 말이다.


"나 요즘 상태 안 좋아~ 병원도 다니고 약도 먹고 있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라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다. '왜 니가 피해자인 척 해!'라고.

언제부터 약을 먹었는지 병원에 다녔는지 알 수는 없었다. 직접 말을 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상담센터를 거론한 뒤부터 대놓고 말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상태가 더 안 좋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건이 있고 바로 직후 병원에 다니겠다고, 그 이후에 차분히 이야기하자던 샘플3은 본인이 병원에 다니는 것을 또 무기로 들고 왔다. 꼬아서 들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귀에는 '너는 상담센터지? 나는 병원 다녀. 그니까 암말 말고 있어.'라고 들렸다.


누가 더 힘든지 대결을 하는 것이 아닌데, 왜 나의 아픔을 거론할 수 조차 없는 상황에 오게 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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