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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y 02. 2021

이사

샘플 3-27

사무실은 임대한 곳이었다. 내가 막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45만 원이었던 월세는 점점 올라서 57만 원이 되었다. 55만 원까지 올리더니 임차인이 세금을 내게 된 것에서 월세를 더 받아야겠다며 57만 원까지 올린 것이다. 월세를 싸게 받겠다던 주인의 아버지(건물주)의 약속은 깨진 지 오래였다.


사무실은 고칠 곳이 많았다. 벽은 가로로 금이 갔고, 화장식은 여전히 화변기였고, 남녀 공용이었다. 그마저도 한쪽은 고장이 나서 사용을 할 수가 없었다. 등도 오래되어서 사무실이 너무 어둡다 보니 사비를 들여서 LED 등으로 바꿨다. 비가 오면 물이 새는 벽도 있었고, 옥상에 뭔가 설치한 이후로 벽이 흔들려서 시계는 돌아가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이 워낙 많이 있었기에 올라간 월세만큼 손 봐달라고 주인에게 요구했어야 한다. 하지만 주인과의 소통을 맡고 있던 샘플3은 "그런 걸 어떻게 말하냐."며 그런 말들을 하지 않았고, 우리는 세입자로서의 권리는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다. 내가 주인과 소통하겠다는 것은 막혔다.


그리고 주인은 또 월세를 올리자고 들었다. 결국 코로나인 상황에 핑계를 대고 이사를 가자고 말했다. 사람들이 사무실에 찾아올 수 없어서 쓰이지 못하고 있는 강당은 필요할 때 다른 곳을 빌리면 되었고, 그렇다면 규모는 반 정도로 줄여도 충분했다.

나에게 이사는 여러 의미로 중요했다. 늘 공포심으로 다가왔던 노란색 문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었고,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장소를 바꾸고 환기시키면 울렁거리는 속이 조금은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정도면 꼭 필요한 일이었다.


샘플3은 이사에 대한 말을 꺼내놓고 알아보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이러다가 '또' 없던 일이 될까 봐 걱정되어서 교차로 등 사무실을 임대 놓은 곳을 찾아 동그라미 치고, 위치와 비용을 정리했다. 그중에 하나라도 찾아가 보고 비교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료를 본 그는 고맙다고 했다. 조금의 변화를 기대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났지만 샘플3은 이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동안에 나는 우리 사무실이 갈만한 곳을 더 알아보고 월세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곳을 찾아냈다. 그것이 아니라면 공유사무실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그는 그곳은 싫다고 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싫다고 했다. 이유를 대충 알 것 같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내게 물었다. 이사를 안 가도 되겠냐고.

고민이 되었다. 이사를 꼭 가야겠다고 말하면 상황이 더 껄끄러워질 것 같았고,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다시 지옥에 빠지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안 좋은 상황인지 고민해볼 겨를도 없이 대답을 요구받았다. 나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꼭 가지는 않아도 돼요."


발등을 찍었다. 그 길로 이사를 가지 않기로 결정되었다. 이사를 가지 않는 이유는 이사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사 비용과 관련되어서는 이미 돈이 들더라도 가자고 결정한 상황이었다. 다른 동료가 결정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자 강당이 없어지면 강당에 있는 책상 등 집기를 처리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고 했다. 중고거래를 통해 팔거나 무료 나눔을 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설득했지만 결국 이사는 가지 않는 것은 확정되었다.


방어선이 무너진 이후로 임시로 세워놓았던 방패들이 하나하나 도미노처럼 무너져갔고 이사는 그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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